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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헤럴드9차 BM콘서트] 서울교회 오정수 장로의 신앙과 삶

최원영 목사 기자   기사승인 2018.12.06  17:5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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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의 몸 된 교회를 지키는 것이 최상의 목적, 최고의 행복”

서울교회는 개혁장로교 신학의 선봉장이었던 이종윤 원로목사가 개척한 교회다. 오정수 장로는 이종윤 목사와 함께 믿음으로 개척하여 오늘날 명실상부한 강남의 대표적인 교회를 이뤘다. 그런데 근래 서울교회가 후임자 문제로 심한 내부 갈등과 법적 문제에 시달리고 있다. 제9차 BM 콘써트는 그 중심에 있는 오정수 장로를 만나 그의 신앙과 삶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오정수회장: 서울교회은퇴장로, 엘지전자 YK대표이사.

◐ “내 인생의 세 분과 만남, 그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

“내 인생에 잊을 수 없는 귀한 하나님의 사람이 세분 있었습니다. 그분들은 내 인생의 기둥과 같습니다.” 오정수 장로는 이렇게 삶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1) 신앙의 자유를 있게 하신 부모님

“나는 실향민이다. 1.4 후퇴 때 살던 고향을 버리고 남한으로 내려왔다. 북한에는 살 수 없는 곳이기에 모든 것을 버리고 생명을 담보 걸고 피난 내려 왔다. 나는 6살 때 피난 내려와서 12월 25일 성탄절에 교회를 처음 출석하였고, 그 이후 일생동안 교회를 기쁨으로 출석을 했다. 내 인생에서 교회를 빼고 설명하라고 하면 남는 것이 없다. 모든 것이 첫 번째는 하나님이고 그리고 교회였다.

늘 부모님께 감사하는 것은 부모님이 생명 걸고 자유민주주의 나라로 오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 땅에서 예수님을 믿고 신앙의 자유를 누리며 살고 있다는 것이 너무도 감사한 일이다. 만약에 부모님이 이북에 살았다면 나의 인생이 얼마나 끔찍하겠는가? 그 생각을 할 때마다 부모님께 감사하게 된다. 예수님을 알게 하셨고, 자유 민주주의를 알게 하셨고,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었고, 일터에서 기쁨의 열매를 얻을 수 있었다.

(2) "철저한 신앙"을 가르치신 주일학교 선생님

주일학교 선생님의 얼굴이나 이름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나에게 주일학교 선생님은 일생동안 절대적인 하나님의 주권을 믿고, 말씀 중심적 신앙을 심어주었다. 뿐만 아니라 이 땅이 전부가 아니라 죽음 후 주님께서 예비하신 나의 본향 천국에 대한 희망을 심어주었다.

어렸을 때 배운 철저한 신앙으로 인해서 일생동안 주일예배를 가장 소중한 삶의 첫 번째 자리로 두고 살았다. 주일예배와 다른 것과 타협하지 않았다. 내 인생에서 예배보다 중요한 것 없다. 주일학교 교사 분들이 심어준 절대적인 신앙은 나의 삶에 철저한 원칙과 기둥이 되었다.

주일성수 중심적인 삶은 사업의 현장에서도 철저히 지켜졌다. L가전회사 대리점을 하고 있을 때, 주일에 대리점 문을 닫았다. 당시 모든 가전업체는 타 회사와 경쟁체제이기에 하루도 쉬지 않고 문을 열었다. 그런데 나는 문을 닫았다. 오직 주일을 온전히 성수하기 위해서이다. 문을 닫는 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선택이다. 계약관계에 있어서 대리점은 항상 을이었다. 하지만 대리점을 유지하는데 어려움이 있더라도 대리점을 회수해 간다하더라도 손해를 감수하고 주일예배를 철저히 지키겠다는 결단을 늘 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나의 대리점이 전국 최고의 대리점이 되도록 세워주셨다. 이런 신앙의 결단을 심어준 분들이 주일학교 교사들이었다. 그분들께 늘 감사하고 있다.

(3) "교회는 벽돌이 아니라 기도로 세워" 이종윤 목사님과 서울교회 개척

이종윤 목사님은 말씀으로 잘 양육하였고, 하나님의 교회를 세울 수 있도록 큰 비전을 심어주었다. 이 목사님은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기 위해 최선을 다한 분이다. 귀한 목사님과 일생동안 믿음의 선한 동역자로 함께 걸어 온 것이 큰 기쁨이며 주님께 늘 감사를 드린다.

이 목사님의 교회를 향한 가치를 나누며 서울교회를 믿음으로 세울 수 있었다는 것은 나에게 주신 하나님의 축복이다. 내 사업보다. 내 가정보다 먼저 교회를 위해 헌신할 수 있었다. 나에게 교회는 한 몸이었다. 다시 태어나도 나는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해 헌신하며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이 최고의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교회를 건축할 때 이종윤 목사님은 한 번도 건축헌금 말씀을 안 하셨다. 목사님은 3가지 원칙을 고수하며 온 성도들과 함께 기도제목을 나누었다.

"교회는 '벽돌'이 아닌 '기도'로 세우고, '기술'이 아닌 '비전'으로 짓게 하옵시며,  '물질'이 아닌 '믿음'으로 이루게 하소서."

 IMF로  인해 교회 건축을 하던 건설사가 도산하면서 교회 건축에 상당히 어려운 시기를 보냈지만, 기도와 비전과 믿음으로 하나되어 오늘날 서울 교회를 건축하는 기쁨을 얻었다. 

오정수 장로. 이영희권사

◐충현교회에서 37세에 장로로 피택과 십이조(2/10) 신앙

예장 합동측의 중심 교회였던 충현교회에서 1983년도 37세에 24대 장로가 되었다. 가장 어린 나이에 장로로 피택 된 것이다. 충현교회에서 하나님이 큰 복도 주셨고, 원로목사님과 후임목사님 사이에서 일어나는 갈등 상황도 보았다. 그러나 나에게 충현교회는 잊지 못할 신앙의 변곡점이었다.

그것은 십일조 생활의 시작이다. 신앙인들에게는 십일조는 생활의 기본이라는 말을 듣고, 즉시 순종했다. 그래서 재산의 십일조를 받쳤다. 말씀을 듣고, 74년 당시 암사아파트 13평 전세금이 80만원, 가게물건, 상가 보증금을 합했더니 560만원이 되었다. 그래서 그날로 56만원을 만들어서 헌금을 들였다. 그 후 토요일마다 십일조와 건축헌금을 구별하여 주일에 십의 2조를 하나님께 드렸다. 세월이 흘러서 뒤돌아보니 몇 천배의 재산으로 불어났다. 내가 헌금을 드리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실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드린 것이 아니다. 주일성수나 십일조는 신앙생활에 기본이라 생각했다. 또한 건축헌금은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는 일이기에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이라 생각했다. 내 본분을 다했더니 주님이 인생길을 열어주셨다. 그 결과 충현교회에서 37세라는 가장어린 나이에 24대 장로로 피택되었다.

 

◐충현교회를 떠나 서울교회 개척 “이웃교회를 섬기는 종된 교회”

충현교회에서 잊을 수 없는 사건은 원로목사와 후임목사 사이에 일어났던 갈등으로 후임 목사가 교회를 사임했다. 당시 이종윤 목사는 말하기를 ‘교회가 싸우는 것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과 같다. 교회가 싸운다는 것은 덕스럽지 못한 일이다’ 말씀하시고 사임 후 한국을 떠났다. 외국에서 이종윤 목사는 심한 내적 갈등에 시달렸다고 한다. ‘내가 왜 이런 누명을 써야 하는가? 왜 내가 이런 고난을 당해야하는가?’ 이 내적 아픔과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 성경을 읽어도 해답을 찾지 못했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신약에서 세례요한이 목 베임을 당한 것을 읽으면서 깊은 갈등에서 헤어 나올 수 있었다고 한다. 주님만 아시면 되지 않는가? 세상 사람들에게 ‘나는 죄가 없다. 나는 억울하다 항변’을 하는 것이 부질없는 짓이라는 것을 깨닫고 모든 아픔을 극복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종윤 목사는 바울이 겐그리아에서 삭발한 것처럼, 삭벌한 후 귀국해서 서울교회를 개척했다. 이 목사는 수 많은 교회들 중의 또 다른 교회가 아니라 이웃을 섬기는 교회를 세우기 위해 40%만 경상비로 쓰고 60%는 선교비와 기관 및 작은 교회 지원으로 섬겼다. 그런데 은퇴 후 교회 갈등으로 서울교회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 후임목사님에게 방해가 될까봐 교회를 멀리하고 1년에 한 번 정도 정든 교회에 올 정도로 마음을 다스렸다. 자신의 전부를 들여 섬겼던 교회가 심한 갈등으로 어려움에 쳐한 현실을 보면서 목사님은 눈물을 흘리고 있다.

 

◐“구경꾼과 같은 신앙생활은 지옥이다”

충현교회가 어려울 때 사람들은 교회를 떠나는 것이 어떤지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내 신앙으로는 교회를 나와서 구경꾼과 같은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이 용납이 안 되었다. ‘부모의 헌신 없는 모습을 보고 자란 자녀들이 제대로 자라 주님의 일꾼 되겠는가?’ 이런 생각을 할 때 마다 숨이 막혀왔다. 구경꾼처럼 신앙생활을 해서는 내 자녀들에게 믿음의 유산을 물려줄 수 없겠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같은 마음을 품은 사람들이 모여서 세운 것이 서울교회이다. 여기서도 마찬가지다. 나에게 구경꾼과 같은 신앙생활은 곧 마음에 지옥이었다. 견딜 수 없는 수치라고 생각했다. 나는 교회에서 봉사하며 섬길 때 기쁨이 충만했다. 물고기가 물에 있을 때 행복한 것처럼 나에게 교회는 영적 호흡의 장소였다.

 

◐“뇌출혈의 고난을 딛고 다시 서다”

은퇴를 앞두고 마음에 ‘하나님이 나에게 특별한 은혜를 주신다면 85세까지 살지 않겠는가?’ 라는 희망을 가져봤다. 그리고 ‘남은 생애 주님이 붙들어주시는 시간까지 믿는 자들에게 본이 되는 성도가 되고 싶다.’는 소원을 품었다.

교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교단 내 지도자들과 대화를 하던 중에 갑자기 뇌출혈이 찾아왔다. 눈에 아지랑이가 순간적으로 지나가는 것 같았다. 손이 맥없이 풀어지며 툭 떨어졌다. 순식간에 몸에 반이 마비가 찾아왔다. 혼자 일어설 수도 움직일 수 도 없었다. 그런 순간에도 오직 교회에 대한 염려로 가득 찼다. 내 몸이 불구가 되었는데도 오직 교회가 정상화되기를 바라는 마음뿐이었다.

뇌출혈로 인해서 손뼉도 못치고, 손가락도 움직여지지 않았다. 서너 시간 지나면 피부가 벌게지면서 몸이 욕창이 생길 것만 같았다. 두 손가락을 서로 맞대는 것이 얼마나 큰 기쁨이고 은혜인지, 손 벽을 마주 치는 것이 얼마나 큰 능력인지를 평상시에 몰랐다. 당연한 것으로 알았다. 막상 뇌출혈로 인해서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이 당연하지 않고,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라는 것을 깨달았다. 건강하게 사는 것, 주님이 주신 큰 은혜이다. 천국백성으로 순간순간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를 느꼈다. 하나님께 영광과 기쁨을 돌리는 것이 최고의 행복이다.

병원 생활하면서 시16:3절 말씀을 통해 큰 힘을 얻었다. “땅에 있는 모든 성도들은 존귀한 자들이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그들에게 있도다” 존귀한 성도들을 섬긴다는 것은 큰 기쁨이다. 섬길 때 나의 모든 즐거움이 나온다는 가장 단순한 진리를 다시 경험했다.

 

◐“야전 사령부 같은 주일식사준비, 하지만 행복해해”

남양주 오장로님의 가정에서 비늘 하우스로 만든 식당에서 주일식사를 준비하는 곳.
1000명의 성도를 생각하며 식사 준비하는 일은 고되지만 행복하다

교회가 2층부터 8층까지는 후임목사가 사용하기 때문에 현재 1층에서 1천명의 성도들이 주일 3부 예배를 드리고 있다. 주일식사 인원만 약 600명이다. 교회식당은 후임목사가 차지하고 있어, 식사를 준비할 공간이 없다. 남양주 자택에서 금요일과 토요일에 성도들이 음식을 준비해서 주일새벽에 교회로 음식을 이동한다. 참으로 번거롭고 힘든 일이다. 그런데 봉사하는 분들이 매주 기쁨으로 감당하고 있다. 불편을 불편이라 말하지 않고 기쁨과 감사로 감당하고 있다. 교회 문제가 해결되면, 1년에 한번은 1층 좁은 공간에서 예배를 드리고 함께 식사를 하면서, 옛날의 어려움들을 기억하며 지내자는 믿음의 결의를 서로 한다.

후임목사 반대하는 분들이 1층에서 예배드리는 모습

◐“하나님의 종인가? 종은 섬기는 것이다”

하나님의 종은 자녀를 섬겨야 한다고 본다. 장로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이 불편하게 들릴 수 있지만 이것이 영적 순리라고 생각한다.

한국교회는 변해야한다. 그래야 미래가 있다. 과거 목사님들은 낮은 자들을 정성껏 섬겼다. 여기서부터 시작해보면 어떨까 생각한다. 장로들도 마찬가지이다. 오늘날 목회자들 중에는 잘못된 리더십을 전수 받아서 말만하고 대접만 받으려고 한다. 수고의 땀을 흘리지 않고 대접 받으려 하는 것은 성경적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예수님처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국교회가 희망이 있다고 본다.

 

◐“말씀을 지키는 삶은 어려운 일이 아냐”

말씀을 지키는 것은 나에게 어려운 주문이 아니다. 행복한 일이다. 삶의 규칙을 준것이라 얼마나 편한가? 성경에보면 살인하지 말라고 했다. 매일 살인한다고 생각해보라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그런데 살인하지 말라고 했다. 얼마나 행복한 주문인가?

도둑질하지 말라. 매일 도둑질하라고 한다면 그의 삶이 얼마나 힘들고 고달프고 불행한 인생이겠는가? 거꾸로 도둑질 하지 않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가? 오히려 도둑질하지 않고 근면 성실하게 일해서 이웃을 돕고 산다면 그 기쁨과 평안함이 얼마나 마음에 가득하지 않겠는가?

부모를 공경하라고 했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마음의 기쁨이 크겠는가? 아니면 부모에게 불효하는 것이 기쁨이 크겠는가? 불효하면 마음에 불편함과 죄의식이 나를 올가미로 묶는다.

하나님이 주신 율법이라는 것은 말씀이라는 것은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원리이다. 인생에서 나쁜 것을 찾지 말라. 항상 좋은 것을 찾으려고 노력하라. 성경말씀을 전하면서 ‘말씀을 지키는 삶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이냐?’ 이렇게 접근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기 위해서, 복을 주시기 위해서, 천국백성답게 살아가는 특권을 주셨으니 얼마나 기쁘고 행복한 말씀인가?’에 초점을 맞추라.

◐참석자들의 후기 고백

C목사: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종말론적 신앙관으로 생명을 주님께 맡기고 믿음으로 담대히 살아가는 장로님의 귀한 신앙을 통해 큰 도전을 받았다.

K목사: 자신의 믿음을 일생동안 살아냈던 귀한 분의 신앙의 간증을 들어서 행복했다. 나도 더욱더 진리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야겠다.

P집사: 어른의 이야기를 들어서 좋았다. 우리 시대의 비극은 교회나 사회나 가정이나 어른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어른의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그런데 70이 넘은 장로님의 생생한 어른의 신앙이야기를 들어서 행복했다. 나도 장로님처럼 주님을 섬겨야겠다.

A목사 질문: A 목사는 ‘목회자가 사업을 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질문했다. 장로님은 목회도 쉽지 않지만 사업은 더 어렵다. 그러나 성공하는 것은 정말 더 어렵다. 가장 어려운 것은 신앙의 절대적인 선을 지키는 것이다. 이것이 무너지면 의미가 없다. 사업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신앙의 원리를 철저히 지키라.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의심하지 말라고 주문했다.

 

◐식사 준비와 점심 만찬을 즐기는 성도들

최원영 목사 jhoncho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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