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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그니칼럼】인생 가을의 끝 자락에서

김종근 목사 기자   기사승인 2019.10.04  08:2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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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가을의 끝 자락에서

정작 세월은 말이없는데
사람들은 세월을 두고 시대를 초월하여 참 많은 말들을 한다.
금년 여름도 입추 말복 처서가 지나가도 늦 더위는 기승을 부리더니, 
추석 무렵에 어마무시한 태풍 링링이 할퀴고 지나 가고, 다시 연이어 태풍 타파가 또 물폭탄을 퍼붓고서는, 
늦 더위까지 휩쓸고 가버렸는지,
요양원 돌담길 옆에 곱게 핀 코스모스가, 서늘한 갈 바람에 살랑 댄다.
아! 가을인가!
정녕 가을인가!. 

태풍은 태생지를 알수있는데 
이 가을은 어디메서 오는가!
문득 얼 결에 소슬바람 일렁이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아! 이미 가을은 내 가슴속에 와 있었네!.

오늘 아침 텃밭에 나가 풋 고추를 따는데 아니 파랗던 고추 잎새가 
노래져 간다.
거름 기운이 다해서인가? 했더니,
한로(寒露)가 코앞에 와 있음을 깨닫고서야 연유를 알았다.

인생의 늦 가을에 이미 이르렀음에도, 
아직도 난  봄 여름 인생으로 아는, 철들지 못한 치기가, 내 삶속에 얼마나 많이 배여 있는가!.
계절의 오고 감을 알고, 
인생의 흐름을 알자! 

하루에도 사 계절(아침 봄,낮 여름, 저녘 놀 가을, 밤 겨울)이 있어,
하루에도 사 계절을 알수 있고,
식물들도 일년의 사 계절을 우리에게 보여 주는데, 유독 인간만이 철 모르는 삶을 살고 있다.
인생의 연륜에도 
유년기 청년기 장년기 노년기의 
사 계절이 있지 아니한가!
예로부터 '인생 칠십 고래 희'(人生七十古來稀)라 했는데,
내도 이제 칠십 중년이 되었으니, 
인생의 깊은 가을에 와 있음에도,
돌아가신 부모님이 가슴이 아리도록 
그 품이 그리운 것은, 아직도 난 철없는 애 늘근인가 보다.

산과 들녘은 예전 그대로인데, 
고락을 같이했던 벗들은 낙엽이 지듯 하나 둘 간곳 없고,
나 또한 인생의 끝자락에 서서, 
하나 둘 비워야 할 시월 나목의 계절을 맞이 하고 있다!.

20대에 청운의 꿈을 품고,
십대 열아홉에 서울로 와, 
십수년 세월을 F빛인생으로 날릴때도 있었고,
병마와 싸우느라 금쪽같은 젊은 날을 허송하기도 하였다.
억만금보다 소중한 그 무수한 날들을, '허무의 강물'에 다 쏟은 후에야, 늦둥이로 하나님을 만나, 
주의 종이 되었다.

꽃은 피어날 때 머금은 향기를 토하고,
가을은 찬 서리가 내릴때 산야를 붉게 물들인다.
언제 피었는지 모를 들녘의 야생화는 향기를 날려 자기의 존재를 알린다.
이렇게 잠시 피었다 지는 꽃도 주위에 진한 향기를 토하듯이,
사는 날 동안 자신을 잘 가꿀줄 알면, 
두메산골 외딴 곳에 홀로 지내도, 
멀리 지구촌 오지까지 향기를 토한다.

나라 소득은 늘어나도, 
나눔의 사랑 지수는 제로에 맴돌아, 
주려 허기지고 목마른 지구촌의 애끓는 소리가 들리는가?
천금같은 무수한 젊은 날들을 
철없이 낭비한 지금, 
이제서야 인생의 가을 들녘에 서서 철없던 지난 날들을 꺼이 꺼이 흐느껴 운다.

요양원 뒤 언덕배기에 심은 멧돌 호박 넝쿨이 여름 동안 쭉쭉 뻗어가더니 
정말 멧돌만한 호박이 무려 마흔덩이가 노오랗게 익었다.
둥근 애호박도 수를 셀수 없을 만큼 주방에 따 들였다.
호박은 봄,여름,가을 수개월동안 제 몫을 톡톡히 다한 것이다.
멧돌호박보다 장구한 세월을 살면서 그대는 무엇을 영글며 살아왔는가?.

누가 '왜 사느냐'고 묻는다면
그대 대답은 무엇인가?.
열심히 벌어 인생의 고기를 입에 넣고 열심히 씹었는데, 
뱃속 창자엔 들어간 건 없고, 
잇사이에 다 끼어 있어 헛 씹었네 그랴!.
인생의 만추!. 검던 머리는 희여지고,
과일처럼 탱글던 얼굴은, 추자 껍질처럼 검게 쪼그라들었음에도, 
망상에 젖어 살고 있는건 아닌가?.

이보게 친구!
곤고한 날이 가깝기 전에,
해와 달과 별들이 어둡기 전에,
다리에 진액이 다하여 구부러 지기 전에,
보는 눈이 더 어두워 지기 전에,
멧돌질 소리가 그치기 전에, 
오르막 길을 두려워 하기 전에,
메뚜기가 무거운 짐이 되기 전에,
너의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라!.

종그니가

고려대, 총신대학원 졸업, 광운대 정보복지대학원 졸업, 서울 용산소망교회 경남 하동교회 부산 영도교회 시무. 현재, 행복이 가득한 교회(예장합동) 행복이 가득한 집(요양원) 시무

내일의 내 모습

 

내가 어르신들을 섬기기 시작한지가 1999년이었으니까, 만 20십년이다.

17년의 일반목회를 그만두고,

오갈데 없는 노인분들을 위한 특수목회를 1999년에,

240평의 무의탁 양로원을

청평땅에 건립하여 2009년8월까지.

2009년 9월에서 2019년 지금까진,

건평 700평의 요양원을 세워,

춘천에서 계속 해 오고 있다.

 

왜냐고요?.

인생의 마지막을 마무리하고 있는 어른신들에게, 영원한 삶을 안내해 드리고 싶어서다.

 

무의탁 양로원을 운영해 오는 동안, 나라나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어떤 혜택도 받아 본게 없다.

하나에서 열끼지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로 운영되었다.

그러다보니 이 사람 저 사람에게서 손을 빌려 충당하기도했다.

그때 진 빚을 지금까지 조금씩 갚고 있다.

 

나는 그당시 노인복지가 걸음마 단계에 있을때였다.

도시와 농촌을 오가며 목회를 하면서, 의지할곳 없는 어르신들을 모시게 되면,

나와 뜻을 같이하는 분들이 많으리라 생각했지만,

오겠다는 분들은 줄을서도

짐을 같이지겠다는이는 드물었다.

세상에 사랑을 받고싶은 이는 많아도,

받은 사랑을 나누고자 하는 이는 적다.

그래도 어려웠지만 십년을 버텨왔다.

 

저마다 살아온 삶이 다르듯,

무의탁 양로원에 입소한 분들의 사연도 천태만상으로 다양하였다,

그 사연들을 어느세월에 다 얘기하랴!.

"홀어미가 10자녀를 기를수는 있어도

열자녀가 홀어머니 한분을 모시기 힘들다"는 말은 그냥 지어낸 말이 아니다.

 

대가족이 해체되고, 또 핵가족도 해체일로에 있어,

나홀로 세대가 늘어나고 있는 지금,

늙어 병든 부모는,

자식들에게 이미 부모가 아닌 짐덩이이자 애물단지가 되어 가고 있다.

특히 요양원 제도가 생긴 이후로

더 욱더 가속도가 붙었다.

 

전에는 부모에 대한 애잔한 정이라도 있었다.

그래서 사흘이 멀다 하고 찾아온 자녀들이 많았다.

지금은 어떤가?

지금은 끈끈한 애정과 아기자기 했던 '아날로그 세대'가 아니고,

인간미라고는 전혀 없는,

말 그대로 '디지탈 세대'다.

"눈에서 멀어지면 맘에서도 멀어진다"는 말이 그냥 생긴 말이 아니다.

부모가 요양원생활을 오래 할수록

찾아 오는 빈도가 적어지는 것이 상례이고,

또 그게 귀찮고 괜히 길바닥에 시간을 낭비하는 헛수고로 비쳐지는듯하다.

그래서 시간이 지날수록 찾는 발걸음도 뜸해진다.

어떤이는 요양원 사무실까지 와서

일만 보고 부모는 보지도 않고

그냥 가는 가족도 있다.

 

효 의식은 희미해져 가고 가족 또는 혈연공동체도 해체되어 가고 있는데

홀로서기를 잃어버린 노인층은 늘어만 가고 있다.

병상에서 노년을 보내야하는 노인들이 늘고 있으니 장수가 어찌 축복이겠는가!.

이것이 오늘 우리의 자화상이고

가장 큰 사회 문제다.

 

요양원에 어르신들을 면회와서

서 있는 가족들의 위상을 보면

그가 누구인지 답이 대충 나온다.

물론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나,

침대에 누워있는 어르신 곁에 바짝 붙어 눈물을 훔치면서

이것 저것 챙기는 여인은 딸이다.

 

그 옆에 엉거주춤하게 서 있는 남자는 사위다.

창가에 서서 먼 산만 보고 있는 남정내는 영락없는 아들이고,

복도에서 휴대폰 만지작거리고 있는 아낙네는 며느리다.

손자 손녀들은 아예 할아버지 할머니를 보지도 않는게 요즘 세태다.

 

요양원에 장기입원하고 있는 부모를 그래도 이따끔씩 찾아 와서,

살뜰히 보살피며 준비해 온 밥이며 반찬이며 죽이라도 떠먹이는

자식은 딸이다.

대개 아들놈들은 침대 모서리에

잠시 걸터앉아 따분한 시간을 보내다가

무슨 핑게를 들이대고는 바람처럼

사라져버린다.

 

아들이 무슨 보물단지라도 되는 양,

오로지 아들 아들 하며,

금지옥엽 키워 놓은 벌(罰)을 늙어서 받고있는 거다.

오늘도,

내일의 내 모습인 수많은 그들이,

내일이 없는 삶을 연명하며,

마지막 종점을 향하여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들도 자신의 말로가

이렇게 될 줄은 전혀 몰랐을 것이다.

 

자신과는

절대 상관이 없는 이야기라고 믿고, 이날까지 속아서 살아 왔겠지만,

그 설마가 현실로 다가온 것을 어쩌랴!.

이것은 현실이고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는 나이가 들고

서서히 정신이 빠져 나가면,

어린애처럼 속알머리가 없어지고,

결국 원하건 원치 않건,

자식이 있건 없건,

마누라나 남편이 있건 없건,

돈이 있건 없건,

잘 살았건 잘못 살았건,

세상 감투를 썼건 못썼건,

잘났건 못났건

대부분 요양원에서

생의 마지막을 보내야만 한다.

 

고려시대에,

60세가 넘어 정신과 육체의 건강을

상실한 노인들은, 밥만 축낸다고

자식들의 지게에 실려,

산속으로 고려장을 떠났다고들 하는데,

오늘날에는,

요양원이 현대판 노인들의 고려장터가

되고 있다.

 

한 번 자식들에게

떠밀려 그곳에 유배되면,

십중팔구는 몸이 회복되어서,

자기 집으로 돌아갈 확률은

너무도 낮다.

그러니 그곳이 고려장터가 아니고

무엇이랴.

그곳은 자기가 가고 싶다고 해서 갈 수

있는 곳도,

가기 싫다고 해서 안 가는 곳도 아니다.

 

늙고 병들고 정신이 혼미해져서,

자식들과의 대화가 단절되기 시작하면,

갈 곳은 그곳 밖에 없다.

살아있는 사람들은

살아야 하니 어쩌랴!

그러니, 아직 몸이 쓸만 할때,

건강 관리를 잘 하라는 거다.

 

내 정신 가지고

사는 동안에라도 맛있는

것 먹고,

가고 싶은 곳 가보고,

보고 싶은 것 보고,

하고 싶은 것 하면서 즐겁고

재미있게 살아야지!.

 

기적 같은 눈부신 세상을,

담 쌓고 우중충한 병상에서

대소변도 가리지못하고,

산것같으나 죽은거나 진배없는

말년을, 그렇게

헛되이 보낼 수는 없지 않는가!.

 

육신의 건강보다 더 소중한게 정신이다.

당신은 당신이 원해서 이 세대에 태어났는가?

내가 숨쉬고 사니까 생명이 내 것인양 싶은가?.

내게 생명을 주신이를 만나보시라!.

그러면 인생의 종점에서 영원한 안식을 얻을테니!

김종근 목사 webmaster@bonhd.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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