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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인물】 홍순원 교수 “나의 사명은 신앙과 인문학의 조화”

윤홍식 기자 기자   기사승인 2019.09.25  20:4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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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으로 신앙적 본을 보이는 신학자 되고 싶어

홍순원 교수 집중 인터뷰

최근 교회와 신학 안에서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인문학은 신학과 신앙과는 어울리지 않는 학문처럼 오해되고 있다. 이에 협성대대학원장이며 협성대 기독교윤리학 교수인 홍순원 교수는 신학과 인문학, 신앙과 인문학은 조화를 이루며 성경적인 인문학 이해는 성경과 신학을 더욱 풍성하게 한다고 말하고 있다. 본헤럴드는 근래 유튜브 강의를 통해 더욱 알려진 <홍순원 교수>를 모시고 대담을 펼쳤다.

▶대담자 : 홍순원 협성대대학원장(목사, 기독교윤리학교수, 홍순원인문학연구소 소장), 최원영 대표(본헤럴드 대표, 본푸른교회 담임목사), 최승인 장로(소망교회, ㈜헤펙엘이디라이팅 대표이사), 김지수 대표(EAP 플랫폼 기업 BEWITH ceo)

▶일시 및 장소 : 2019년 9월 20일 오전 11시, 본헤럴드 신문사(본푸른교회)

▶동행취재 : 윤홍식 웹본부장

 

홍순원 교수(협성대학교 대학원장, 기독교윤리학 교수, 홍순원 인문학연구소 소장, 독일 하이델베르크 대학교 기독교윤리학 박사)

 

Q1. 좀 초보적이지만 노골적인 질문으로 시작을 하겠다. 오늘날 인문학이 교회에서도 부각되는 것은 맞지만 인문학은 비신앙적이라는 오해도 있다. 교수님 생각하는 신학과 인문학은 서로 대척점에 서 있는 학문인가? 아니면 동전의 양면처럼 신학의 뒷면이 인문학이고 인문학의 뒷면이 신학인가? 아니면 서로 전혀 별개의 학문인가?

A. 좋은 질문을 했다. 인문학에 대한 사람들의 오해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인문학은 성경이나 신학과 전혀 다른 것이 아니다. 인문학은 인간에 관한 학문이며 인간이 형성하고 또한 형성되는 사회 현실을 해석하고 선도하는 학문이다. 인문학은 인간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인간을 더 깊이 이해하게 해 준다. 인문학은 성경과 신학을 더욱 풍성하게 이해하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오히려 인문학을 배제한 성경이나 신학 이해는 미래사회와 인간의 구원을 더욱 어둡게 할 것이다.

 

Q2. 어떤 사람들은 인문학적인 사유는 믿음에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한다. 즉,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생각하고 되묻는 과정은 결국 믿음을 방해한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인문학은 구원의 답을 주지 못하고 오히려 의심을 갖게 한다고 말한다. 교수님이 생각하시는 인문학과 믿음은 어떤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A. 나에게 인문학은 율법이다. 여기서 율법의 의미는 복음의 반대 개념이 아니라 복음을 더욱 복음 되게 세우는 율법이다. 오늘날 기독교는 행함이 없는 복음에 치우쳐져 있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사람은 인문학적인 사고를 통해서도 믿음을 나타낼 수 있다. 인문학에서 신앙으로 갈 수 없지만 신앙을 통해서 인문학을 이해할 수 있다. 안셀무스의 말 “나는 이해하기 위해 믿는다(Credo ut intelligam)라는 명구가 있다. 다른 말로 ”나는 알기 위해 믿는다“는 말이다. 우리의 믿음은 지식까지 변화시킨다. 우리가 성경의 깊이를 이해하면 현실(세상)을 이해할 수 있다. 영성은 이성과 단절되지 않고 영성을 통해서 우리의 이성은 더욱 깊어진다.

 

Q3. 교수님의 강연이 최근 유튜브 상에서도 굉장히 핫한 이슈로 인기를 얻고 있다. 물론 인기가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다는 것은 교회와 목회 현장에서 인문학적 소양을 요청하는 시대를 살고 있지 않는가 생각하게 된다. 한 가지 궁금한 것은 교수님이 표현하신 <나를 비우는 인문학>이란 무슨 의미인가?

A.나를 비우는 인문학은 빌립보서 2장5절~8절 말씀 중 7절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라는 말씀을 의미한다. 나 중심적인 가치관에 매여 있으면 말씀대로 실천할 수 없다. 나는 인문학을 통해서 이것을 실천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Q4. 몇일 전 교수님의 유튜브 강연을 통해서 선악과 사건을 새롭게 이해했다. 강연을 통해 선악과 사건은 일회적 사건이 아니라 예수님의 광야 시험사건 그리고 모든 인류들이 매일 맞닥뜨리는 실존적 사건인 것을 깨달았다. 또 선악과 사건은 예정이냐 자유의지냐의 분수령이 되기도 한다. 선악과 사건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A.선악과를 에덴동산의 사건을 넘어 돌을 떡덩이로 만들어 먹으라는 사단의 유혹을 이기신 사건 그리고 우리들 각자가 맞닥뜨리는 실존의 사건으로 이해한 것은 바른 이해다. 그런데 이 모든 것에 앞서 하나님의 은총이 있다. 하나님의 은총이 모든 것을 이끈다. 예정의 은총을 경험한 사람이 고백하는 것이 신앙고백이다. 선악과 속에 이미 하나님의 창조의 은총이 담겨있다. 하나님이 자기를 드러내시는 것이 은총이다. 선악과는 인간의 운명이나 저주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총이 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자유의지이다. 이 안에 하나님의 신비한 은총이 담겨 있다. 예정이든 자유의지이든지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이해해야 한다.

 

Q5. 오늘날 동성애는 사회적인 갈등의 중요 이슈다. 기독교 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한편에서는 동성애를 질병으로 보고 이것을 치료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하고, 또 한편에서는 개인적 성향이며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성적 소수자들에 대한 차별이라고 말한다. 동성애를 어떤 관점으로 봐야하나?

A. 동성애의 중요한 키워드는 원죄다. 동성애는 이성애가 바라보는 세상적인 죄의 문제가 아니라 원죄의 문제다. 이성애를 가지고 동성애를 비난하는 사람들도 이 원죄의 문제에 걸려있다. 물론 이성애도 원죄이다. 온 세상 현실이 원죄이다. 이것은 타락과 심판을 말하는 노아의 질서의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동성애는 인간의 타락한 심성 속에 있는 원죄의 한 증상이다. 동성애는 반드시 이성애로 돌아가야 한다. 그러나 이성애로 가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아가페적인 창조의 사람으로 돌아가야 한다.

Q6. 오늘날 인간 사회가 맞닥뜨리는 중요한 또 하나의 논제는 AI다. AI는 인간과 교회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A. 교회 뿐 만 아니라 인간의 위기가 AI시대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교회가 회복할 수 있는 결정적인 계기도 AI시대라고 본다. 교회가 이때 할 수 있는 것은 영성이다.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AI는 영성의 영역까지 나갈 수 없다. 교회가 영성을 회복하는 것이 AI 시대에 교회의 중요한 역할이 될 것이다. 인문학은 영성 앞에서는 한계를 드러내겠지만 영성의 역할은 부각될 것이다.

 

Q7. 사회윤리학자로서 가장 좋아하는 용어가 있다면?

A.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단어는 가치관이다. 어떤 사회나 어떤 조직이든 가치관의 문제가 바로 서지 않으면 문제가 발생한다. 가치 없는 것을 가치 있게 여기고 가치 있는 것을 외면하는 세상에서 중요한 것이 가치관이다. 사도 바울에게 최고의 가치는 십자가였다. 그 가치 있는 것을 붙잡을 때 이전에 가치 있던 것들을 과감히 버릴 수 있었다.

Q7. 교수님의 거듭남의 체험은 무엇인가?

A.중학교 때 어머니 따라 기도원에 갔는데, 주변 사람들은 뭔가 영적인 체험들이 나타는데 나만 영적 체험을 못하는 영적 소외감이 찾아왔다. 일주일 쯤 되었을 때 소외감이 좌절감이 되었다. 당시 아버지가 서대문감리교회에서 목회를 하셨는데, 수련회에서 돌아와 혼자 기도했다. 그리고 그 때 성령체험을 하고 방언의 은사를 받았다.

 

Q8. 교수님의 신앙적 배경을 더 들려 줄 수 있나?

A.아버지가 감리교목사이다. 할아버지는 감리교 장로이다. 아버지가 여러 교회를 개척해서 봉헌하고 떠나시는 삶을 살았다. 아버지의 목회 신념은 “공성이불거(功成而不居)”였다. 사명을 다하였으면 그 자리에 머물지 않고 총총히 떠나는 모습이 아버지가 보여주신 모습이다. 그래서 아버지는 목회자들에게 더욱 존경받는 목회자이다. 아버지는 교회를 힘들게 건축하고 봉헌하였으면 그것이 나의 교회가 아니라고 생각하셨다. 그리고 곧 바로 그 교회를 떠나셨다. 남들은 건축한 교회를 기반 삼아 더 좋은 교회로 찾아가는데, 아버지는 또 다시 어려운 교회로 찾아가 개척하다시피 일하시고 교회를 건축하고 다시 떠나시길 반복했다.

아버지의 그런 모습을 통해서 나는 ‘신앙을 가진 신학자가 되자 영성을 가진 신학자가 되자. 학문적으로 본이 되지 말고 신앙적으로 본이 되자’는 신념을 세울 수 있었다. 아버지는 갈라디아서 1:10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말씀을 유언으로 남기셨기 때문에, 아버지가 좋아하는 말씀이자, 내가 사랑하는 좌우명 같은 말씀이 되었다.

Q9. 자녀들이나 지금의 젊은이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

A.오직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세상에서도 실패해도 하나님을 알고 경외하면 된다. 그러나 세상에서 성공해도 하나님을 모르면 실패한 것이다. 참 지혜는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Q10. 좋아하는 인물은 누구인가?

A.성경에서 좋아하는 인물은 역시 바울이다. 귀한 것을 주님 앞에 내려놓는 삶과 죽음을 알고 죽음을 피하지 않은 삶을 존경한다. 신학자로서는 본훼퍼 (Dietrich Bonhoeffer, 1906-1945)다. 그는 말로 신학한 사람이 아니라 삶으로 신학한 사람이다.

한국의 목회자로서는 아버지다, 50대 젊은 나이에 하늘의 부름을 받고 돌아가셨지만 아버지는 정말 목회자다운 모습을 보이셨다. 어느 날 몸이 좋지 못해 병원에 갔는데 주치의가 “목사님 여기서 목회를 계속하면 3개월 사시고 멈추면 살 수 있습니다” 했을 때에 “나는 목회를 선택할 테니 가족에게 내가 중병에 걸렸다고 말하지 마시오. 죽은 후에 말하라”고 했고 그 사실을 장례식장에 찾아온 주치의에게 듣게 되었다.

 

Q11. 신앙인들에게 권장하는 책이 있다면?

A. 본훼퍼의 <나를 따르라, 1937>를 꼭 읽으라 권면하고 싶다.

 

Q12. 교수님의 사명이나 비전은 무엇인가?

A. 신앙적인 비전은 목사이기 때문에, 최소한 나의 설교와 삶을 일치하는 것이고, 학문적인 목표는 인문학과 신앙을 조화를 시키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근래 유튜브를 하는 이유이다.

 

 

 

윤홍식 기자 jesuspoint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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