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배 교수의 구약이야기(145) - 요엘(2)

박신배 교수 / 연세대 구약학 박사 현 그리스도대 구약교수 창조문학 편집위원 한국 평화학회 부회장 한국 구약학회 부회장 KC대 전 총장

“그런즉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있어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되고 다른 이가 없는 줄을 너희가 알 것이라 내 백성이 영영히 수치를 당치 아니하리로다”(욜2:27).

요엘 선지자는 ‘주의 날’을 선포한다. 이 주의 날은 요엘서의 중심어가 되며 이 날이 구원과 탄식의 날을 말하고 있다. “시온에서 나팔을 불며 나의 성산에서 호각을 불어 이 땅 거민으로 다 떨게 할찌니 이는 여호와의 날이 이르게 됨이니라 이제 임박하였으니”(욜2:1). 이 날은 여호와의 날로서 심판의 날이 된다. “불이 그들의 앞을 사르며 불꽃이 그들의 뒤를 태우니 그 전의 땅은 황무한 들 같으니 그들을 피한 자가 없도다”(욜2:3). 요엘은 바벨론 포로 이전의 활동하며 예언을 하며 유다가 바벨론에 침공을 받을 것을 예언하고 있다.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같이 변하려니와”(욜2:31). 선지자는 한 개인의 운명을 말하기보다 한 공동체, 국가 공동체의 미래와 그 운명을 말하고 있다. 이 거시적 예언 구조 속에서 한 개인의 운명은 그 구원과 심판의 미래 메시지에 달려있다. 또한 그러한 공동체의 비극적 운명 속에서도 개인의 구원이 극적으로 일어날 수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욜2:32).

요엘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며 첫 부분은 요엘1:1-27절이고, 두 번째 부분은 요엘2:28-3:21이다. 이 두 이야기의 중심에 ‘주의 날’이 있다(욜2:10;3:15). “사람이 많음이여 판결(하루츠) 골짜기에 사람이 많음이여, 판결 골짜기에 여호와의 날이 가까움이로다”(욜3:14). 이 두 이야기의 끝맺음은 신앙 선언으로 한다. “그런즉 너희가 나는 내 성산 시온에 거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 인줄 알 것이라 예루살렘이 거룩하리니 다시는 이방 사람이 그 가운데로 통행하지 못하리로다”(욜3:17). 주님은 하나님의 백성을 구원하시며 백성의 도시를 구원하겠다는 약속을 한다. 그래서 두 이야기가 긴장 속에 하나의 이야기로 결합된다. 탄식 부분(욜1:4-20;2:1-17)과 구원의 약속(욜2:19;2:28-3:21)을 함께 구성하며 예배 의식적인 형태로서 전반적인 구조를 형성한다.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며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찌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욜2:12-13).

요엘은 예배의 부름에 응할 때에 취할 태도를 말한다. 그것이 의식적인 회개와 금식이 아니라 마음의 회개와 진정한 금식을 요구한다고 말한다. 이는 진정한 구원은 하나님의 영이 임하면서 구원의 약속이 이뤄진다 한다.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그 때에 내가 또 내 신으로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욜2:28-29). “그 날에 산들이 단 포도주를 떨어뜨릴 것이며 작은 산들이 젖을 흘릴 것이며 유다 모든 시내가 물을 흘릴 것이며 유다 모든 시내가 물을 흘릴 것이며 여호와의 전에서 샘이 흘러나와서 싯딤 골짜기에 대리라”(욜3:18). 요엘은 참된 구원이 하나님에게서 나온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즉 자연의 축복을 들어 말하며 여호와의 전에서 흐르는 샘이 그 날에 온 유다를 흐르게 된다고 말하고 있다.

요엘 선지자는 종말론적 기대를 가지고 포로기 이전 선지자의 예언 선포와 유사한 메시지를 말한다. 열방의 파괴와 예루살렘의 축복과 인도, 구원을 선포한다. 요엘은 자신의 시대의 위험, 위기와 경제적 극한 상황에서 메시지를 선포한다. “한 이족이 내 땅에 올라왔음이로다 그들은 강하고 무수하며 그 이는 사자의 이 같고 그 어금니는 암사자의 어금니 같도다”(욜1:6). “백성을 모아 그 회를 거룩케 하고 장로를 모으며 소아와 젖 먹는 자를 모으며 신랑을 그 방에서 나오게 하며 신부도 그 골방에서 나오게 하고”(욜2:16). 특히 요엘은 심한 메뚜기 재앙과 가뭄의 상황에서 그의 메시지를 선포한다. “팟종이가 남긴 것을 메뚜기가 먹고 메뚜기가 남긴 것을 늣이 먹고 늣이 남긴 것을 황충이 먹었도다”(욜1:4). “밭이 황무하고 토지가 처량하니 곡식이 진하여 새 포도주가 말랐고 기름이 다하였도다”(욜1:10).

매 시대마다 종교적인 어둠과 경제적, 정치적인 어려움이 있고 환란이 있다. 신앙인은 이러한 역경을 극복할 수 있는 주의 은혜를 간구하게 되며 공동체가 생존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비전을 보여주게 된다. 선지자는 시대의 종말론적 상황에서 미래 구원의 약속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주의 종이다. 우리도 이 시대에 요엘과 같은 선지자로 부름을 받았다. ‘주의 날’, ‘여호와의 날’을 보고 우리 시대의 주의 비전을 선포할 수 있을까? 아브라함의 언약이 복음의 언약으로 이어지는 비전을 갈라디아서의 바울은 보고 있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갈4:4-5).

 

 

저작권자 © 본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