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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송목사] 수치와 자비의 만남(요7:53-8:11)

발행인최원영목사 기자   기사승인 2019.10.16  15: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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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덮어주는 것이 기독교 영성이다"

※이건송목사님이 본푸른교회에서 나눈 주일 말씀 내용을 요약했다. 좋은 설교를 듣고 함께 나눈다는 것은 큰 기쁨이다.

 

이건송목사. 장로교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졸업 후 도미하여 "오마하 한인장장로교회 담임목사님"으로 사역한 후 지금은 한국에서 임마누엘하우스교회 협동목사로 사역하고 있다.

교회란 생명을 살리는 곳이다. 또한 교회는 이 땅에 버려진 분들을 가슴에 품고, 눈물로 씨앗을 키우는 곳이다.

사람의 감정은 다양하다. 두려움, 분노, 사랑, 기쁨 등 다양하다. 남이 없었으면 존재하지 않는 감정이 있다, 그것이 수치이다.

미스트롯에 출연한 한 가수가 고음부분에서 음 이탈 하면서 울었다, 왜 울었는가? 수치심과 후회 때문이다. 혼자 연습실에서 음 이탈 했다면 수치심이 없다.

수치심은 영혼의 늪지대라고 한다. 한 번 빠지면 헤어 나오기가 힘들다.

이 수치심이 죄와 관련되었다면 어떻겠는가?

 

오늘 본문에 등장한 간음한 여인의 수치심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우리의 영혼을 갉아먹는 수치가 있다면, 당신은 어떻겠는가?

1)본문해석

(1)대 가로의 의미: [요7:53-8:11], 성경에 대 가로를 치고, 어떤 오래된 사본에는 없음이라고 해석을 달아 놓았다. 오래된 사본에 없는데 후에 내용이 삽입이 되었다는 것이다.

요한복음은 대략 AD.85-100년 사이에 기록되었고, AD. 200-300년 후까지 간음한 여인에 대한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왜 이 본문이 나중에 들어갔을까?

초대교회는 성에 대한 윤리가 매우 낮았다. 선교초기 대도시마다 성에 대한 인식이 낮았다. 그러면 왜 초기에 본문을 뺐는가? 기독교가 성에 대한 윤리의식이 너무 낮다는 인식을 줄 수 있어 빼었다고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후에 삽입한 이유는, 예수그리스도의 사랑과 자비와 용서가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율법보다 사랑이, 자비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이다.

 

(2)수치심과 두려움에 떨고 있는 여인을 생각해보라. 그 여인이 ‘나’라고 생각해보라. 많은 군중들앞에 벌벌 떨고 있는 모습, 수치심과 창피함과 두려움으로 떨고 있는 나라고 생각해보라.

(3)고발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이 되어봅시다.

(4)바리새인이 예수님을 향한 고약한 질문을 던진다(5절), 율법에 돌로 쳐 죽이라 했는데, 당신의 생각은 뭐요.

◉예수님이 율법대로 하라 하면, 지금까지 말했던 용서하라, 사랑하라고 말했던 자신의 삶을 뒤엎는 것이다.

◉용서하라고 하면, 레위기 법을 어기는 것이다.

◉예수님이 돌로 치라하면, 로마법에 걸린다. 사형판결을 할 수 있는 것은 로마인만 가능하다. 이스라엘인들에게 사형판결 권한이 없다.

 

(5)예수님이 땅에 글을 썼다

◉손가락으로 땅에 썼다: 무엇 무엇에 반대해서 쓰다(6절). 무엇을 썼는지 모른다.

◉땅에 또 쓰셨다(8절): 오래된 사본을 보면, 그 사람들의 죄에 대해서 썼다. 한 사람 한사람의 죄에 대해서 썼다. 너 3계명 어겼잖아. 너 7계명 어겼잖아. 예수님앞에서 자신의 죄가 들어나자 더 이상 그 자리에 있을 수 없어서 한 사람씩 한 사람씩 떠났다.

 

빛이신 예수님 앞에 자신이 내면적인 죄가 드러나자 그 자리를 떠나기 시작했다.

 

예수님의 목적은 책망하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여인의 수치를 덮어주는 것, 구원의 기회를 열어주는 것이 예수님의 목적이다. 다시 사회인으로 회복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여인의 수치를 도와주는 것이 예수님의 목적이다. 예수님은 정죄하고 비판하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인격적으로 해결해주었다. 바리새인들의 난감한 질문을 조용하게 해결하셨다. 간음한 여인의 모든 문제도 해결 받았다.

 

2)사랑은 모든 것을 덮는다

사랑으로 수치로 덮은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다.

(1)마태복음을 보면, 마리아의 임신 사실을 요셉이 덮어주었다. 아름다운 사건이다.

마1:19, 새번역으로 읽은 것이 더 좋다. “마리아를 부끄럽게 안하려고 조용히 파혼하려고 했다”어떤 이유로 임신했는지 모르지만, 요셉은 마리아를 사랑하기 때문에 보호하려고 했다. 마리아가 사람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수치를 덮어준 것이다.

 

"덮어주는 것이 기독교의 영성"이다.

 

(2)누가복음 15장은 돌아온 탕자의 비유이다. 집나간 둘째 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사랑이 그려져 있다. 집으로 돌아 온 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사랑은 온통 덮어주는 것으로 되어 있다.

거지의 행색을 덮어주었다. 반지를 끼워주었다. 잃어버린 아들의 권위를 반지로 덮어주었다.

신발로 덮어주었다. 노예는 신발이 없다. 신발을 신 켜 주었다. 좋은 옷으로 덮어주었다. 제일 좋은 옷으로 온 몸을 덮어주었다. 살진 송아지를 잡아 잔치를 베풀어주었다. 죽었다 돌아온 아들을 환영하는 파티로 덮어주었다. 아버지는 아들의 수치를 덮어주었다. 반지로 옷으로 신발로 잔치로 덮어주었다.

그런데, 큰 아들은 동생의 수치를 까발렸다. 형이 동생의 정보를 우리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형은 말한다. 저 놈은 다 손해를 끼친 놈입니다. 형은 시기, 질투, 부끄러움을 다 드러냈다.

그 자리에는 예수님과 수치심에 가득한 여인만 남았다. 모두가 떠난 자리에는 수치심에 가득한 여인과 자비의 예수님만이 남았다. 두 사람이 만난 것이다.

(4)요한복음 4장에 보면, 우물가의 여인 이야기가 나온다. 남편을 다섯 둔 여인이다. 그런데 진짜 남편이라 말할 수 있는 남편이 없다. 얼마나 외롭고, 수치심으로 가득찬 여인이다.

예수님과 여인이 단 둘이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예수님을 단 둘이 만난 여인은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들어가 외쳤다.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요4:29). 수치심을 뛰어넘는 당당함이 살아났다.

(5)본문에도 여인과 예수님만 남았다. 여인의 인격을 존중하기 위해서이다. 죄의 문제는 일반적이고 대중적인 문제가 아니라, 자신과 예수님 사이에서만 해결해야 한다. 그 자리에 다른 것이 끼어들면 안 된다. 예수님은 당사자의 부끄러움과 수치와 죄의 문제를 해결해주셨다.

예수처럼, 우리도 인격적이었으면 한다. 복음은 인격적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행동이 비 복음적이다. 비인격적으로 복음을 전할 때가 많다. 마음이 아프다. 무엇이 인격적이고 비인격적인가?

(6)2010년 동계올림픽에서, 김연아 선수가 금메달을 획득했다. 우리나라 해설자와 미국의 해설자의 차이가 있다.

예를 들면, 한국 해설자는 트리플 악셀 성공했습니다. 추가 점수를 받습니다. 실수를 할때에는 감점이 얼마입니다. 안타깝습니다. 금메달 유력합니다. 해설자의 말에는 비평, 성적, 숫자, 다른 선수와 비교, 성취도로 연기를 평가하고 있다.

미국해설자는 나비 같죠, 천사를 보고 있는 듯 합니다. 제 생애에 저런 연기를 볼 수 있다니 감사할뿐입니다. 빙판위에 실크를 깔아 놓은 것 같아요.

인격이란 사람이 사람으로 가질 수 있는 자격이나 품격이라고 정의 한다. 상황에 처해져 있는 사람을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다. 이것이 품격이다.

그리스도인이란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이다. 그리스도를 추종하는 사람이다. 예수님 믿습니다. 예수님 닮기 원합니다. 무엇을 따르는 것인가? 그분의 인격을 따르자. 그분이 인격적으로 살았던 삶을 따라야 한다. 예수님은 고통 받은 사람, 상처받은 사람을 인격적으로 만나주셨다.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만남 중에 최고의 인격적인 만남이다. 수치를 사랑과 자비로 덮어주셨다.

(7)예수님은 단순하게 덮어주신 것이 아니라, 죄에 대해서 덮어주신 것이다(10,11절). 예수님은 여인을 정죄하지 않았다. 가서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 집행유예를 해준 것이다. 법원에서 판사가 판결할 때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 “징역에 처한다. 다만 2년간 이 형을 유예한다.”고 선언한다. 여기서 “다만” 이란 단어가 중요하다. 집행유예를 해준다는 것이다.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하나님은 헵시바와 뿔라라고 했다. 헵시바의 뜻은 “나의 기쁨은 그녀 안에 있다.”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나의 기쁨이 그녀안에 있다’고 했다.

뿔라의 의미는 “결혼한 여성”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다.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말한다. 신약적 의미로는 죄악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덮어주는 것이다. 집행유예를 해준 것이다.

(8)예수님이 간음한 여인에게 진정한 신랑이 되어주셨다. 깊은 수치심에 빠져있는 사람에게 예수님은 신랑이 되어 주셨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으로 다시 신부 삼아 주셨다. 예수님만이 이 일을 하 실 수 있다. 예수님만이 죄와 수치의 문제를 해결해주실 수 있다. 예수님은 죽음이란 수치에 노출했다. 그리고 그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주셨다. 수치심과 죄책감에 빠져 있는 우리를 순결한 신부로 불러주신 분께 우리의 마음을 내어 드리자.

 

발행인최원영목사 jhoncho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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