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희 목사의 CDN 성경연구】 (32) 기업(企業)

 

NC. Cumberland University(Ph.D.), LA. Fuller Theological Seminary(D.Min.Cand.) , 총신대학교 일반대학원(Th.M.), 고려신학대학원(M.Div.), 고신대학교 신학과(B.A.), 고신대학교 외래교수(2004-2011년), 현)한국실천신학원 교수(4년제 대학기관), 현)총회신학교 서울캠퍼스 교수, 현)서울성서대학 교수 현)대광교회 담임목사(서울서부노회, 금천구

영원한 하늘 기업을 약속받은 사람들

‘기업’을 뜻하는 영어가 여러 있다. 기업을 business, 기업인을 businessman 또는 businesswoman이라고 한다. 문자 그대로 직역하면 기업인은 참으로 ‘바쁜 사람’이다. 한자로 쓰면 의미가 달라진다. ‘기업(企業)’의 ‘기(企)’자는 사람 인(人)에 그칠 지(止)이다. 사람이 멈춰 서서 멀리 바라보는 모습이다. 50년 혹은 100년 후에 어떤 사업이 국가와 사회에 공헌할 것인가를 생각하고 시작한 사업이 바로 ‘기업’이라는 것이다.

성경에서 기업 혹 상속에 해당하는 ‘클레로스’는 ‘부수다’를 뜻하는 ‘클라오’에서 파생되었다. 기본적인 의미는 ‘제비’ 또는 ‘제비뽑기’ lot를 뜻한다. 땅이 제비뽑기에 의하여 아마 토지의 일반 용도의 구성에 따라 분할되었기 때문에 클레로스는 ‘나누는 것’, ‘제비뽑기로 받는 땅’, ‘땅의 소 구획’, 그리고 궁극적으로 ‘기업’, ‘상속’을 뜻하게 되었다. ‘클레로노미아’의 핵심적인 의미는 ‘상속’ 그리고 ‘재산’이다. 그러나 가나안 땅의 할당 방식으로 인해 둘 다 이음동의어(Synonym)이다. 둘 다 그 땅이 이스라엘의 소유가 된 것은 정복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에 의한 것임을 인정한다.

기업에 관한 대부분의 구약의 구절들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에게 약속하신 유업으로서 가나안 땅에 관한 것이었다. 이것은 기업을 받는 당사자인 이스라엘이나 기업의 내용이 되는 땅에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시겠다고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다스리고 그들의 안전을 책임지신다는 서약에 있다. κληρονομια(클레로노미아)는 클레로스와 할당하다, 분배하다를 뜻하는 ‘네모’의 합성어이다. 제비뽑기로 나누는 행동을 의미하고, 그 다음으로 그렇게 나누어진 일부분, 즉 기업을 뜻한다. 성경에서 기업은 기업을 받은 자, 즉 상속자를 바라보는 것도 아니고, 기업인이 받은 땅이나 영역을 뜻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기업이 땅이요 이스라엘이라고 하기에 그것을 또는 그들을 기업으로 주신 하나님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세상 기업은 땅을 보고 사람을 멀리서 본다면 하나님의 기업은 아브라함이 멀리서 하나님이 주실 영원한 기업인 더 나은 본향이요 하늘나라를 믿음으로 바라보는 것이 성경의 기업인이요 믿음의 사람들이다.

기업을 뜻하는 ‘company’의 어원은 이탈리아어 ‘compagnia’다. 12세기 피렌체를 비롯한 이탈리아 도시들에 등장했던 ‘가족회사’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당시엔 기업이 망하면 출자자 모두가 엄중한 처벌을 받고 심한 경우 노예가 되기도 했다. 그래서 모든 걸 함께 나누고 책임지는 가족적 유대감과 동질성이 가장 중요했다. ‘콤파니아’가 ‘빵을 나눠 먹다’라는 뜻의 라틴어 합성어에서 유래한 것도 그 때문이다. 빵이라는 말은 포르투갈어 pão에서 유래했다. 프랑스어로는 pain, 스페인어로는 pan이다. 모두 라틴어 파니스(panis)에서 유래했다. enterprise는 ‘안으로 잡아넣다’라는 의미도 있고, prise의 어원을 pray로 보게 되면 ‘안에서 원하다’라는 뜻이 된다. 무엇을 잡고자 하고 무엇을 원하는 것이 기업인가. 만약 이윤이나 사람을 원한다고 할 수 있다.

에베소서에서 바울의 두 번째 기도는 우리로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을 알게 해 달라는 것이다. 여기서 기업은 하나님의 기업이냐 아니면 우리들의 기업이냐. 즉 하나님이 받으시는 기업이나 하나님이 주시는 기업 둘 중 하나를 의미할 수 있다. 야훼께서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들에게 가나안을 기업으로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비뽑기에 의해 분배된 가나안 땅은 그 비록 들어가기 위해서 어려운 싸움을 치루야 했지만 오직 야훼의 선물로 인함이고 그들 자신의 노력에 의한 것이 아니다. 그 할당은 야훼의 명령대로 따라 취해져 각 지파의 수대로 분배하여 기업을 삼았다. 그 땅은 획득 또는 쟁취의 땅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업이다. 땅이 하나님의 기업이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 하나님이 기업으로 주신 땅에 임재하시며 다스리며 예배를 받으셔야 한다는 뜻이다.

옛 이스라엘은 지상의 기업을 받기로 약속되어 있었다. 그러나 새 이스라엘은 이제 하늘의 기업을 받게 된 것이다. 전자는 우리의 기업과 하나님이 그분의 백성들을 완전한 소유물로 취하시는 것과 부합하는 그들의 기업을 신자들이 얻으면 이로 인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찬미를 받는 것에 대해 말한다. 후자는 하나님의 기업에 대해 말한다.

 

1. 하나님의 기업의 영광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가나안 땅은 야훼의 기업이고 온 땅에서 특별히 골라 예비하신 곳이었다. 그 땅이 야훼이 기업이라는 개념에서 병행하여 발전한 사상은 그가 택하시고 그 땅으로 인도하신 이스라엘 백성 역시 그의 기업이라는 것이다. 레위인들은 땅을 소유할 수 없었다. 영적으로 이 사상은 이스라엘 전체로 확장된다. 또한 이스라엘은 특별히 야훼께 속한 백성으로서 야훼의 기업어어야만 했다.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의 기업은 종종 그의 백성 이스라엘에 대한 동의어로 사용된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택하시고 이집트에서 인도하여 내어 ‘주의 백성’이 ‘주의 기업’이다. 기업, 상속에 해당하는 ‘나할라’는 어근은 동사 ‘나할’이다. ‘소유를 얻거나 취하다, 상속하다’라는 뜻이다. 하나님에 의해 주어진 땅과 이스라엘 백성과의 관계를 가장 분명하게 나타내준다. 왜냐하면 그것은 선물로 물려받은 불가결의 요소, 양도할 수 없는 사명,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스라엘 역사에서 계획과 행동에 대한 표현으로 쓰이기 때문이다. 상속의 과정보다 일반적인 소유를 더 많이 강조한다. 창세기와 출애굽기보다 가나안 땅에서 할당을 갈망하는 민수기와 신명기, 그리고 여호수아에서 가장 흔하게 나온다.

신약성경의 다른 곳에서 기업은 성도들, 즉 하나님의 백성들 사이에 있는 한 위치와 관계가 있다. 사도행전 20:32에서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사도행전 26:18에서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등이다. 기도문에서 말하는 기업은 하나님의 기업이다. 그의 기업은 지금의 그분의 백성이 된 신자들로, 즉 교회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에게 가나안을 기업으로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이집트를 출발하여 가나안에 도착하기 위해 여러 차례 싸움을 치러야 했지만 오직 하나님의 선물이요 약속이지 그들 자신의 노력에 의한 것, 쟁취의 소산물이 아니다. 여호수아는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는 선물로 호소하고 있다. 땅이 하나님의 소유라는 개념이 하나님께서 제비뽑기로 땅을 주셨던 자들에게서 일반적으로 발견된다. 땅은 항상 하나님에 의해 부여받은 소유와 상속 재산으로 간주되었다. 이것은 안식년과 희년에 대한 규례를 설명해 주기도 한다(레 25장). 안식년과 희년은 소유 땅과 노예의 회복을 위해 제공되었다. 왜냐하면 땅은 여호와의 소유이며, 따라서 여호와의 주장과 규제를 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에 대한 계시와 하나님과의 누림은 하나님이 그의 백성들을 상속하실 때에 발생할 것이다. 그때에 하나님의 영광은 명확하게 나타날 것이다. 우리의 기업, 즉 우리가 하나님에게 받은 기업을 인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여야 한다면 하나님의 기업, 즉 하나님이 그의 백성들을 소유하시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하나님이 소유하시는 곳에 하나님의 임재가 드러나고 이로 인해 영광을 나타난다.

 

2. 하나님의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을 알게 하소서

마가복음 12:1-9에 ‘악한 포도원 농부의 비유’에서 아들은 상속자이고, 상속의 내용은 하나님의 나라이다(마 21:43). 이 비유는 구약 및 유대교에서보다 아들이 되는 것과 상속을 받는 것을 밀접하게 연결시키고 있다. 로마서 8:17 역시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상속자다. 어떤 의미에서 성도들은 양자됨에 의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었다. 따라서 하나님의 상속권도 그리스도와 공유하게 된다. 그리스도가 상속자라면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와 동료 상속자들이다(비교. 갈 3:29; 4:7). 이들은 하나님의 택함과 부르심에 의해서만 상속자가 된다. 이 나라는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가 이루어지는 새 세계와 동일시하게 한다.

‘그 기업’은 ‘하나님의 기업’이다. 하나님의 기업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족장들에게 약속해 주셨기 때문에, 이 땅이 기업이다. 가나안 땅이 하나님의 기업이다(삼상 26:19; 삼하 21:3; 왕상 8:36; 대하 20:11; ). 또한 하나님이 각 민족들에게 그들의 분깃을 주셨을 때,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그 자신의 분깃과 기업으로 선택하셨다(신 32:8-9). 여기서 기업에 해당하는 클레로노미아는 ‘영원한 기업’을 의미한다. 기업(유업, 상속)이란 모든 축복이 보장된 하나님의 나라이다(마 25:34; 고전 6:9; 갈 5:21). 팔복에서 가난한 자가 이미 하늘나라를 소유하고 있다고 선포하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임했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은 이 시대에 이미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다만 완전한 소유는 재림 때 이루어질 질 것이다.

‘영광의’가 형용사의 ‘영광스러운’(glorious)으로 취해야할지라도, 그것은 기업보다는 풍성함을 수식해야 한다. 그러나 ‘영광의 풍성함’은 이런 개념들 이상을 의미한다. 바울은 하나님이 따로 세우신 사람들에게 기업을 이으실 때 내재되어 있는 놀라운 영광을 의미한다.

바울은 자신이 독자들이 하나님 자신의 모든 풍성함을 기업으로 받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기를 원하고 있다. ‘영광의 풍성함’이라는 문구는 로마서 9:23에 나온다. 이 구절에서 이 문구는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이방인들로부터 자신의 백성을 부르신 것과 관련되어 있다. 여기서 영광의 풍성함은 특히 그의 백성들 가운데 하나님의 기업과 연관이 있다.

 

 

저작권자 © 본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