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희 목사의 CDN 성경연구】 (35) 보좌(throne)

 

NC. Cumberland University(Ph.D.), LA. Fuller Theological Seminary(D.Min.Cand.) , 총신대학교 일반대학원(Th.M.), 고려신학대학원(M.Div.), 고신대학교 신학과(B.A.), 고신대학교 외래교수(2004-2011년), 현)한국실천신학원 교수(4년제 대학기관), 현)총회신학교 서울캠퍼스 교수, 현)서울성서대학 교수 현)대광교회 담임목사(서울서부노회, 금천구)

보좌의 이미지는 성경 전체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이미지일 뿐만 아니라 다양한 의미들을 갖는 이미지 중의 하나이다. 보좌는 권위, 위엄, 화려함을 의미한다. 보좌의 이미지는 성경의 가장 기본적인 주제들 중의 하나를 표현하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왕으로서 다스린다는 것이다. 서양에서도 사람이 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두고 지위(status)라고 부른다. ‘서다’를 뜻하는 라틴어 stare에서 파생되었다. 어딘가에 서는 것, 그게 바로 지위이고, 지위란 자신의 자리를 갖는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지위의 고하를 나누기 좋아한다. 사회의 세세한 면에 따라 그 조건은 달라질 수 있지만 지위에 높고 낮은 게 있다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속된 말로, 다 같은 ‘자리’에 있는 게 아닌 것이다.

왕의 보좌는 동방에서 헬라로 들어왔다. 신의 보좌는 Zeus의 특권이지만, 때때로 Zeus와 Hera를 위한 이중 보좌가 사용되기도 한다. 동양에서 왕 또는 황제의 권세에 대한 개념과 신의 권세에 대한 개념을 구별하지 않고 사용했다. 헬라인들이 이 사상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은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시기(B.C. 356-323)에 이르러서다. 동방의 황제나 왕에 대한 존칭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중국 송나라 고승(高丞)이 편찬한 고서 사물기원(事物紀原)에서 유래했다. 천자에게는 폐하(陛下), 임금에게는 전하(殿下), 장군에게는 휘하(麾下), 높은 벼슬아치에겐 각하, 부모에겐 슬하(膝下), 그리고 다정한 친지에게는 족하(足下)라는 존칭을 쓴다고 한다. 존대의 대상이 살고 있는 건물이나 발아래서 우러러본다는 의미다. 그래서 왕의 보좌, 즉 왕좌는 높은 것이 특색이다. 많은 학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성경의 한 중심적이고, 통합적인 주제로서 이해한다. 그리고 보좌의 이미지는 이 주제의 기초가 된다. 보좌라는 단어는 구약성경에서 135번, 신약성경에 61번 등장한다.

솔로몬의 보좌는 여섯 계단 위에 있었다. 야훼의 보좌는 ‘높이 들려’ 있다고 묘사되고 있다(사 6:1). 솔로몬의 보좌는 매우 인상적이다. 상아를 새기고 그 위에 고귀한 금을 덧붙여서 만들었다. 사자, 즉 고대 근동에서 왕의 힘과 권위에 대한 보편적인 상징물을 양 팔걸이에 놓여 있었다. 엄격하게 말해서 왕좌라는 말은 동방에서 유래한 말이다. 보좌에 앉는 것은 절대 군주의 유일무이한 존엄성과 그에게 속해 있는 사람들을 지배하는 완전한 우월성을 나타내는 것이다. 보좌에 앉는 것은 지배자만이 누릴 수 있는 권리이다. 왕의 보좌나 그가 보좌에 앉아 있는 것에 관련된 구절은 통치를 위한 힘과 권위를 나타낸다. 왕이 자신의 권력을 결정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보좌에 않아 있을 때뿐이다. 훌륭한 장식은 그의 거룩한 존엄성을 나타낸다. 보좌의 양편에는 하늘의 수행원들, 즉 통치력을 나타내는 상징들로서의 인간의 두뇌나 사자의 머리를 지니고 있는 날개 달린 생물들이 서있다(참조, 왕상 10:18 이하).

『The Queen of Sheba visits King Solomon』, Artist:Lucas de Heere, 1559

 

1. 하나님 나라에서 보좌의 이미지

보좌라는 말이 성경에는 문자적인 의미와 상징적인 의미 두 가지로 사용되었다. 보좌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כיסא’(키세)는 모든 좌석을 언급한다. 특별히 존귀한 사람이 않는 중요한 좌석을 언급할 수도 있다(왕상 2:19). 왕정제도가 확립된 이래로 보좌는 통치자(창 41:40)와 그의 친족들(왕상 2:19)이나 대리자들(느 3:7)의 전유물이었다. 본래 왕이 재판관의 직무도 수행하였음으로 보좌는 왕의 권력과 정의(시 122:5)를 상징하는 실체였다. 왕은 야훼의 대표자이므로 그의 보좌는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야훼의 나라의 위’이며(대상 28:5), 하늘에 있는 야훼의 보좌를 예표한다. 그러므로 의와 공의가 그 보좌에 앉은 자에게 요구된다. 구약에서 진정한 하나님의 보좌에 견줄만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러나 예를 들어 하늘이 하나님의 보좌라고 언급하기도 한다. 언약궤는 한 번도 하나님의 빈 보좌라고 언급되지 않는다.

조선 말기의 학자인 전우의 ‘간재집(艮齋集)’에 있는 글이다. ‘한 자리라도 제대로 된 자리에 머문다면 온 사방의 표준이 될 것이다(一席得其所止 四海以之爲準)’. 그는 다음과 같이 정리하여 말하였다. “땅은 사방으로 넓고 시간은 만세토록 영원한데 사람이 머무르는 것은 자리 하나와 백 년에 불과하다.” 키세 단어의 어근 ‘카사’는 덮개가 있는 구조, 즉 보좌를 시사한다. 키세와 반대로 백성들은 보통 그 앞에 굻어 엎드려 있기 때문에, 이 의자(보좌)는 위엄의 표시로 사용되고 있다. 따라서 이 단어를 보좌라는 의미로 사용하려면 왕의 개념이 추가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왕위의 개념은 그 나라의 위라는 어구 속에 반영되어 있다(대하 7:18). 보좌는 왕(창 41:40)이나 왕의 모친(왕상 2:19), 총독(느 3:7)을 위한 자리이다. 파라오의 장자는 보좌를 함께 나누었다(출 11:5). 솔로몬은 다윗의 자리에 앉는다(왕상 1:13). 이렇게 보좌는 통치의 상징이다.

보좌에 해당하는 ‘θρονος’(드로노스)는 인도 게르만 어근 dhere에서 유래한 말이며, 라틴어 firmus와 게르만어 dingen과 관련 있는 말이다. 자리 및 발등상과 관계있는 이 단어는 등받침과 팔받침, 그리고 발등상을 갖춘 높은 의자를 가리킨다. 이것은 장로나 교사 같은 사람들이 앉는 자리인데, 후에는 신들을 위한 자리가 된다. 이 단어의 복수형(골 1:16)은 왕이나 신의 권능을 의미할 수 있다. 본래 어떤 특별한 상징적인 의미없이 사용되었던 이 말은 Suetonius에 의해 처음으로 사용되었던 ‘신의 보좌(the seat of a god)’를 일컫는 말로만 사용되었던 라틴어 thronos에 비해 매우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과 하늘의 보좌에 앉으심을 연결시킨다. 하나님은 그의 아들을 무덤에서 일으키실 뿐만 아니라 그를 하늘의 보좌로까지 높이셨다. 성경에서 보좌를 언급한 구절들 중의 대부분은 하나님의 보좌에 관한 것이다(약 60%). 하나님의 왕권은 성경에서 여러 번 강조되었으며, 그의 보좌는 그의 주권적인 통치에 대한 하나의 가시적인 증거였다. 하나님은 그의 보좌에서 통치하신다. 보좌는 위엄과 권위를 상징한다. 이 위엄과 권위는 직접 보좌를 차지한 자를 넘어 확대할 수 있다(삼하 7:13-16).

 

2. 하늘의 보좌 우편

예수님이 부활·승천하여 하늘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는 것은 초대교회의 전통적인 표현이다. 이 구절은 하늘이라는 영역에서 영광의 자리에 앉으신 예수님이 우주의 통치자로서 왕위에 오르신 것에 대해 말한다. 이사야 66:1 이하에 근거하여 예수님께서는 하늘을 하나님의 보좌라고 부르신다(마 5:34). 이 보좌를 두고 맹세하는 것은 하나님을 두고 맹세하는 것과 같다. 스데반은 동일한 말씀을 인용하여 하나님이 인간의 성전에 갇혀 계실 수 없음을 역설한다(행 7:49). 인자로서 예수님은 자신의 보좌에서 심판하실 것이다(마 25:31 이하). 신실한 자들은 어린양의 보좌에 자리를 약속받고(계 3:21), 그리스도의 재림 전의 심판은 그들에게 위임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재림 후의 심판에는 크고 흰 보좌만이 있다(계 20:11).

God Inviting Christ to Sit on the Throne at His Right Hand (1645) by Pieter de Grebber

예수님은 부활·승천하여 이제 ‘하늘’로 높아지셨다. 이 말은 하나님의 능력이 그리스도에게 주셨던 위엄과 영예를 표현한다(빌 2:9-11). 하늘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그리스도의 임재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영역의 더 큰 실재를 가리킨다. 중대한 생명의 중심이 이 땅의 삶에 있지 않고 그리스도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하늘의 영역에 있다.

시편 110편은 원래 왕의 대관식 시편으로 사용되어 왔을 것이다. ‘우편에 앉는다’는 왕이 종종 어떤 특정 도시나 국가의 수호신 옆에 앉는 것으로 표현되는 고대근동 세계에서 유사점을 가지고 있다. 보좌에 앉는다는 것은 왕권을 행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른 사람의 보좌에 앉는 것은 왕위를 계승한다는 의미이다.

보좌는 끊임없이 교체되는 권력자들과 달리 항구적인 요소였다. 마찬가지로 다윗의 통치를 영원히 견고케하리라고 약속한 나단의 약속은(삼하 7:13) 보좌에 관한 것이었다(참조, 왕상 28:5; 29:23). 다윗의 보좌는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삼하 7:22 이하). 이사야 9:6에서는 메시야의 보좌가 영원할 것이라고 언급된다. 다윗의 왕권은 하나님의 왕권을 암시하므로, 이 보좌는 야훼 왕국의 보좌(대상 28:5), 혹은 야훼 자신의 보좌(대상 29:23)를 뜻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왕좌에 대한 언급이나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보좌에 대한 언급(사 66:1)은 통치자 하나님의 위엄을 표현한다. 하나님의 능력이 그리스도를 하늘 보좌 우편에 앉혔다는 것은 곧 그 통치자가 그 신을 대표하여 통치권을 행사하며, 또한 최고의 영예를 위치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구약성경 자체에서 야훼의 오른편은 호의, 승리 그리고 능력의 자리로 표현된다.

1세기 일부 유대인이 시편 110편을 메시야 사상으로 이해했다는 것은 예수님이 그것을 사용한 사례에서 볼 수 있다. 예수님은 성전에서 이 시편을 선포하실 때 주에 해당하는 ‘아돈’이 바로 메시야를 의미하는 것을 청중들도 인정할 것이라고 여기셨다(막 12:37). 시편 110:1 말씀에 따라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는 것은 교회의 초기 신앙고백과 설교에서 증거 되었다. 보좌에 앉는다는 것은 자리에 앉다와 왕 혹은 신의 위엄을 지니게 되었음을 뜻하는 말이다.

기름부음이 궁극적으로 그리스도께 있듯이, 이스라엘 왕으로서 높임을 받는 것 역시 그 궁극적인 목적이 그리스도에게 있는 것이다. 물론 하늘 보좌에 앉는 것은 공간적으로 비유되고 있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보좌 우편이라는 것을 하나의 장소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권위의 상징으로 이해해야 한다. 하늘이라는 것도 지구 바깥 쪽 외계와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참고. 1:3).

예수님이 대제사장의 심문을 받을 때 하신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는 구약의 두 본문을 함께 인용하였다(시 110:1; 단 7:13). 아마도 예수님 시대에 유대주의 해석자들이 이미 이 두 본문을 메시야에 관한 본문으로 함께 사용했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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