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구 박사(전 총신대, 대신대 총장)

나는 중학교 때 이성봉 목사님의 부흥회에 몇 번 참석하여 큰 은혜를 받았다. 그 때 내가 목사님으로부터 강하게 받은 인상은 긴 수염에 그 풍체 좋고 구수한 입담으로 설교하는데 밤 집회는 존 번연의 천로역정(Pilgrim’s Progress)을 강해했다. 그의 설교는 참으로 알아듣기 쉽고 은혜가 충만했다. 이성봉 목사님은 김익두 목사님의 부흥회에서 큰 은혜를 받았고, 김익두 목사의 대를 이어 한국교회의 위대한 대 부흥역사의 주역이었다. 그래서 이성봉 목사를 가르쳐 한국의 무디(D.L. Moody)로 알려졌다. 

이성봉 목사

이성봉 목사(1900-1965)는 성결교회의 부흥사로서 일생 동안 순결하고 깨끗하고 무흠한 부흥사로 존경 받는 목사로 살았다. 이성봉 목사는 성결교회의 목사이지만 장로교, 감리교, 침례교 등 모든 교파를 초월해서 해방 전후, 그리고 6.25 이후에 고난 받고 찌들게 가난한 사람들과 낭패와 실망 가운데 있던 한국성도들에게 복음을 통한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를 들려 주었다. 그는 한국교회의 강단의 거성으로 30여년간 한국교회의 성도들에게 끼친 영향은 실로 대단했었다. 그는 성결교회의 사중복음(四重福音)을 그대로 받아 체험하고 전하려고 힘썼다. 

그런데 그의 설교의 독특한 것은 설교의 마지막에 결단을 촉구하는 시간에는 꼭 그가 작사했던 허사가를 부르곤 했다. 즉

“세상만사 살피니 참 헛되구나
부귀공명 장수인들 무엇 하리요
고대광실 높은 집 문전옥답도
우리 한번 죽어지면 일장의 춘몽

인생일귀 북망산 불귀객 되니
일배황토 가련코 가이없구나
솔로몬의 큰 영광 옛말이 되니
부귀공명 장수인들 무엇 하리요

홍안소년 미인들아 자랑치 말고
영웅호걸 열사들아 뽐내지 말라
유수 같은 세월은 널 재촉하고 
저 적막한 공동묘지 널 기다린다”

고 했다. 그런데 차라리 이 노래를 설교도입으로 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 구원의 진리를 잘 설교하고 마지막에 이 세상에 대한 허무주의(Nihilism)를 말하는 것이 됐고 이것이 당시 한국기독교인들의 세계관이 되었다. 성경에는 「세상」이란 말이 많이 나온다. 그런데 「세상」을 어떤 의미로 보느냐에 따라서 신앙이 달라진다. 한국어 성경에 「세상」이란 헬라어의 Kosmos와 Aion의 번역이다. 전자는 공간적이고 장소적인데 반해서 후자는 시간적 의미를 가진다. 여기는 주로 Kosmos를 중심 해서 생각해 보자. 

성경에 나타난 「세상」은 여섯 가지 뜻이 있는데, 첫째는 하나님이 창조한 모든 세상 둘째는 사람의 거주지를 말할 때, 셋 째는 전 인류를 말할 때, 넷째는 유대인 외에 이방인을 가르칠 때, 다섯째는 타락한 인간을 가르칠 때, 여섯째는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멸망 받을 수 밖에 없으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변화되고 새롭게 된 세상을 가르칠 때 사용한다. 그런데 한국교회 성도들에게 세상이란 존 번연(John Bunyan)이 말했던 장망성으로서의 세상만을 생각한다. 기독도(徒)가 부패하고 썩어진 세상을 버리고 천성을 향하여 걸어가는 것이 오직 그리스도인의 신앙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하기는 존번연이 살던 시대, 특별히 감옥에서 세월을 보내던 그에게는 이 세상은 그냥 썩어질 장망성으로 생각했고, 주님이 주신 영생을 위해 달려가는 것이 옳았다. 그런데 이 존 번연의 <천로역정>이 한국에는 성경이 번역되기 전에 먼저 출판되어 읽혀졌다. 바로 그 즘에 한국은 국권을 잃고, 일제 강점기에 들어갔다. 그 후 6.25 북한 공산당의 남침으로 한국은 초토화 되었다. 그래서 성도들의 신앙은 이 세상은 버려진 땅이요 희망이 없는 죄악의 세상이므로, 이 세상에 소망 둘 것도 없고, 이 세상에는 우리가 해야 할 사명도, 소명도 없이 오직 영원한 천국을 소망하는 것만이 우리의 믿음이요 즐거움이란 것이다. 그래서 1900년대에서 1960년대까지 한국교회의 강단의 설교는 이 세상은 썩어질 장망성으로 관심을 둘 필요가 없는 것으로 허무주의(Nihilism)를 복음처럼 받는 하나의 출발점이었다. 그러니 교회에서 목사의 설교도 부르는 찬송도 그랬고, 가스펠도 이성봉 목사님이 불렀던 <허사가>가 애창되었다. 그래서 한국교회 성도들은 자연스레 이원론적(Dualistic) 세계관을 갖게 되었다. 

우리는 여기서 성경에서 「세상」이란 여섯 가지 개념 가운데 마지막 뜻을 받아야 한다. <요3:16>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다.」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다. 이 세상은 죄악의 도성이기는 해도 선교의 대상이요, 소명(Calling)의 장소이다. 칼빈주의자들의 구호처럼, <성도들은 세상에 살고는 있으나 세상에 속한 자는 아니다>. 오늘의 한국교회 성도들은 <세상과 짝하지 마라> <나와 세상은 간 곳 없고>등으로만 머리에 입력 되어서, 이 세상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 맡겨진 복음 선포와 선교적 사명을 잊어버렸다. 아브라함 카이퍼(A. Kuyper)박사의 말처럼, 이 세상에는 아무 곳도 하나님의 주권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 이 세상은 도피해야 할 장소가 아니라, 우리가 변화의 주체자가 되어 새롭게 하고 정복해야 할 땅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란 울타리에 갇혀서 세상과 나와는 무관한 듯이 살아가는 것이 성경적 신앙인지 물어야겠다. 하나님의 영광과 주권을 믿고 하나님의 은혜로 개인구원을 받은 자면, 놀라운 복음의 폭탄을 가지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 학문 등 삶의 모든 영역을 변화시키는 하나님 나라의 위대한 소명의 주체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온 세상 즉,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의 영혼을 책임지는 선교의 사명을 받은 것이다. 세상은 도피의 장소가 아니라 정복해야 할 땅이며 거대한 우리의 일터요, 선교의 장소이다.

저작권자 © 본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