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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인 목사, 평화교회담임, 성결대, 중앙대석사, 서울신대박사, 미국 United Thological Seminary 선교학 박사, 공군군목, 성결대학교, 서울신학대학교 외래교수

교회 안에 고령자들이 늘어난다. 젊은 층은 잘 믿으려 하지 않거나, 기존 출석자들도 출석률이 줄어들고 더구나 출생률 저하로 다음 세대들이 들어오지 않아 교회마다 비상이다. 그렇다고 고령자들을 내버려 두고 젊은 층만 쫓아갈 수는 없다. 고령자를 위한 목회에 최선을 다할 때 그나마 후손들 가운데 주께로 돌아오는 이들이 있음을 본다. 나는 우리 교회 성도들, 특히 고령자들에게 늘 강조하는 것이 몇 가지 있다. 오늘 시편을 통해 그것을 나누려 한다.

나이 들어갈수록 이사하거나 교회를 바꾸면 안 된다. 고령자가 되면 변화에 적응하기 쉽지 않다. 낯선 환경이나 익숙하지 않은 교회로 이전하게 되면 그것도 상당한 스트레스로 작용할 수 있다. 친구와 노래는 익숙할수록 좋다는 말은 신앙생활에도 적용된다. 가능하다면 교회 근처에 거주하면서 기존의 성도들과 인간관계를 유지하고 교회 생활을 지속하는 것이 신앙에 유익하다.

조직을 바꾸지 말아야 한다. 부흥이 어렵다고 기존 구역조직을 셀이나 목장조직으로 바꾸는 교회가 많다. 젊은 층이 많다면 쉽게 적응될 수 있다. 고령자들에게는 오히려 혼동될 수 있다. 그동안 친근했던 얼굴들을 바꾼다는 것은 상당한 모험이 필요하다. 만약 꼭 필요해서 바꾸어야 한다면 기존의 조직 사람들이 고령자들을 자주 만나 저들의 불만을 들어주고 이해시켜 주어야 한다.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고령자들은 보통 세 가지에 익숙하다. 예배, 기도, 교제다. 예배 형식이 바뀌거나 예배가 소홀하면 금방 느낀다. 기도회에 고령자들의 참여가 높다면 기도 제목이나 기도회 방식에 대해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고령자들의 친구 관계는 매우 중요하다. 점점 소원해지기 쉬운 세상에서 그나마 교회 친구들이 남아있다는 것은 큰 위안이 된다. 고령자들에게 교제의 장을 만들어 주어야 편안하게 신앙할 수 있다.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직장에서나 가정에서 은퇴했다 해도 교회 안에서는 여전히 할 일이 많다. 임무를 주는 것은 단순히 교회의 필요 때문만은 아니다. 고령자들에게도 안정감을 준다. 역할부여는 고령자들이 자칫 빠지기 쉬운 소외감을 줄여준다. 역할을 맡길 때는 3가지를 고려한다. 첫째, 예전에 하던 일을 계속하게 한다. 둘째, 현재의 신체 기능이나 정신 능력에 가능한 범위 내에서 일하게 한다. 셋째, 주위로부터 인정받는 것은 중요하다. 자신감을 느끼도록 구체적이고 분명하게 칭찬해줄 필요가 있다.

인간관계를 잘 가져야 한다. 고령 성도들에게 꼭 필요한 세 친구가 있다. 첫째, 공감하는 친구이다. 문제를 서로 공감할 수 있는 친구가 필요하다. 둘째, 규범을 제시하는 친구다. 화내거나 짜증 내지 않고 규범을 제시해주는 친구다. 셋째, 긴급할 때 의지할 수 있는 친구다. 절박한 상황에도 기댈 수 있는 친구가 있다면 교회 생활에 힘이 된다.

시편에 나오는 내 친구를 소개하고 싶다. 그는 나를 변호하는 친구다(1절), 정말 황당한 경험, 억울한 경험, 어디 말 못 할 경험을 할 때 변호해 주는 친구가 있다면 얼마나 좋은가? 내 말에 귀를 기울여 주는 친구다(2절). 답답할 때 꼭 해결까지는 아니어도 들어만 주는 친구가 있다면 정신건강에 유익하다. 내게 진정한 돕는 자가 된다(4절). 막막할 때 도움이 없다는 것은 살기 어려운 일이다. 목마를 때 물 한잔 건네주는 친구가 필요하다. 큰돈이 아니어도 푼돈이 절실할 때 손을 내밀어준다면 진정 도움이 된다. 나 대신 싸워주는 친구가 좋다(5절).

나는 목사이지만 어쩌다 욕하고 싶은 사람을 만난다. 하지만 직접 내뱉지 않는데, 대신 누군가 욕을 해주면 마음이 시원해질 것 같다. 나는 천상 싸움을 못한다. 아니 싸우는 자리를 의도적으로 피한다. 그러나 그 친구는 나 대신 싸워준다. 내 친구, 얼마나 좋은가? 그 친구는 오늘도 내 곁에 있어 든든하다. “하나님, 내 친구 되셔서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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