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배 교수의 구약이야기(154) - 아모스(6)

박신배 교수 / 연세대 구약학 박사, 현 그리스도대 구약교수, 창조문학 편집위원, 한국 평화학회 전 부회장, 한국 구약학회 전 부회장, KC대 전 총장

 

종말의 환상과 결과를 보는 눈

“가라사대 아모스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내가 가로되 여름 실과 한 광주리니이다 하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내 백성 이스라엘의 끝이 이르렀은즉 내가 다시는 저를 용서치 아니하리리”(암8:2).

아모스는 첫 환상을 보는데 그것은 피할 수 없는 심판이 오는 비전이었다. 추수를 파괴하는 곤충의 떼와 들판을 태우는 불이었다. “주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신 것이 이러하니라. 왕이 풀을 벤 후 풀이 다시 움 돋기 시작할 때에 주께서 황충을 지으시매 황충이 땅의 풀을 다 먹은지라...주 여호와께서 또 내게 보이신 것이 이러하니라. 주 여호와께서 명하여 불로 징벌하게 하시니 불이 큰 바다를 삼키고 육지까지 먹으려 하는지라”(암7:2-5). 아모스는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하나님께 중보 기도한다. “오 주 하나님이시여 용서하소서 내가 당신을 구하리이다 어찌 야곱을 설 수 있으리요”(암7:2,5). 이러한 종말의 환상은 우리에게는 인공지능(AI)과 로봇 세계와 빅데이터의 출현이며 스마트폰으로 인한 인간성의 파괴이다. 여기서 문명성이 가지는 종말적 현상과 결과를 보고 아모스의 종말의 환상을 보아야 할 것이다.

아모스가 본 두 번째 환상의 짝은 여름 실과 광주리였다. 이 환상을 통해 이스라엘 전체의 심판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내 백성 이스라엘의 끝이 이르렀다”(암8:2). “여호와께서 야곱의 영광을 가리켜 맹세하시되 내가 저희의 모든 소위를 영영 잊지 아니하리라 하셨나니”(암8:7).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그 날에 내가 해로 대낮에 지게 하여 백주에 땅을 캄캄케 하며 너희 절기를 애통으로 너희 모든 노래를 애곡으로 변하며 모든 사람으로 굵은 베로 허리를 동이게 하며 모든 머리를 대머리 되게 하며 독자의 죽음을 인하여 애통하듯 하게하며 그 결국으로 곤고한 날과 같게 하리라”(암8:9-10). 임박한 종말이 다가오며 결국 지진까지 나타나는 현상이 도래하고 있었고 파멸의 사건과 전쟁이 일어난다. “곡식 단을 가득히 실은 수레가 흙을 누름같이 내가 너희 자리에 너희를 누르리니...용사 중에 굳센 자는 그날에 벌거벗고야 도망하리라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암2:13,16).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분노가 외국을 도구로 사용하게 된다. “그 원수 앞에 사로잡혀 갈찌라도 내가 거기서 칼을 명하여 살육하게 할 것이라 내가 저희에게 주목하여 화를 내리고 복을 내리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암9:4).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한 나라를 일으켜 너희를 치리니 저희가 하맛 어귀에서부터 아라바 시내까지 너희를 학대하리라 하셨느니라”(암6:14).

 

종말과 심판을 예견하는 눈은 복이 있어

아모스는 이 종말의 원인이 사회 정의와 부정한 제의에 있음을 밝힌다. 그는 배운 예언 학습을 통해 예언 말씀을 선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지시하는 말씀으로 전한다. 또한 그는 주변 세계의 닫혀진 눈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그의 시대를 꿰뚫어 보는 예언자적 눈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소명을 받기 전에 하나님의 비전을 보았고 미래에 일어날 사건을 예측하는 과정을 공부하지 않고 다만 예언적 상상력을 가지고 현재와 다른 것을 보았고, 하나님의 정의에 부족한 점을 보고 있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범죄를 지은 결과 심판이 불가피하며 재앙이 일어날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재앙은 이스라엘의 눈 먼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의 징벌을 받을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운명이었다. “내 백성 이스라엘의 끝이 이르렀은즉 내가 다시는 저를 용서치 아니하리니”(암8:2). 따라서 이 심판은 전체 이스라엘에 이른 것이며 위협하며 먼 미래에 일어날 일이 아니라 급박한 것이었다. 종말은 반드시 이뤄질 운명적 일이었다. 선포된 심판의 미래는 현재 일어나기로 정해졌고 그 예언적 말씀은 종말론적 메시지라고 일컬어진다. “처녀 이스라엘이 엎드러졌음이여 다시 일어나지 못하리로다 자기 땅에 던지움이여 일으킬 자 없으리로다”(암5:2). 번성의 시대에 심판이 선포되는 것은 이스라엘에서 이해할 수 없는 존재가 있었는데 그들은 부자와 강한 자들이었다. 이들은 듣기 싫은 소리를 하고 있는 아모스의 선포를 들으려 하고 있지 않았다.

오늘 한국은 물질의 풍요를 누리는 번영의 시대이다. 여기에 국제 정세와 국제 정치 역학관계로 인해 위기가 도래하고 있다. 어제 지소미아(한미일 동맹) 협정 연기는 앞으로 중국과 러시아 등 대륙 세력들의 위협이 계속 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북 이스라엘은 계속되는 재난과 재앙, 저주의 소리를 들으며 도망갈 수 없는 점증적인 징벌의 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화 있을찐저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는 자여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날을 사모하느뇨 그날은 어두움이요 빛이 아니라...여호와의 날이 어찌 어두워서 빛이 없음이 아니며 캄캄하여 빛남이 없음이 아니냐”(암5:18,20).

오늘날 자신의 종말, 공동체의 멸망, 국가와 민족의 종말을 보는 눈은 복이 있다. 왜냐하면 회개할 수 있는 기회와 시간이 있기 때문이다. 요나서의 니느웨 사람 십 이만 백성이 요나의 하루 선포된 말씀을 듣고 회개하여 구원을 받았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구원의 기회가 열려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계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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