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전쟁 발발 전인 1941년 6월에 65세의 이승만 박사는 일본이 미국을 침략하려는 속셈을 눈치채고 미국에 알려야겠다는 생각에  『JAPAN INSIDE OUT』(일본의 내막을 벗기다)이란 책을 저술했다. 이 책을 통해 이승만 박사는 일본 군국주의자들의 침략 야욕이 유럽과 미국까지 침략할 것이라며 일본 제국주의의 실체를 밝혔다. 

그러나 그 당시 미국내에서는 이승만 박사의 별명이 “독립에 미친 늙은이”였다. 그래서 알지도 못하는 “코리아”라는 곳에서 온 “독립에 미친 늙은이”가 하는 헛소리로 보고 “일본이 감히 어떻게 우릴 공격해?”라며 모두 콧방귀를 뀌었다. 그런데 이승만 박사의 책이 출판된지 불과 몇 개월만에 일본은 미국을 침략했다. 그것이 1941년 12월 7일(현지시간)에 발생한 “진주만 폭격”이다.

그는 이 책을 제1장 “일본의 성전사명(聖戰使命)과 전쟁심리”로 시작해서 일본 제국주의의 만행으로 최초의 희생제물이 된 대한민국의 상황을 설명하면서 자유민주주의의 최대의 적은 일본의 천황 전체주의(Mikadoism)와 공산주의라고 밝혔다. 그 내용중 다음은 일본 천황 전체주의에 대한 글이다.

일본 광고는 1919년 5월 9일 일본 국내 신문 니로쿠의 사설 번역본을 다음과 같이 게재했다.

“세계의 평화를 보존하고 인류의 복지를 증진하는 것이 일본 황실의 사명이다. 하늘은 이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자질을 제국 가문에 투자했다... 일본 황실은 6천만 명의 부모일 뿐만 아니라 지구상의 모든 인류의 부모다... 전쟁 공포로부터 인류를 구하자고 제안한 국제연맹은 일본 황실을 그 머리 위에 세워야만 진정한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징벌군과 초국가적이고 초인종적인 성격을 지녀야 한다. 그리고 이 힘은 일본 황실에서만 찾을 수 있다.”

일본인들은 그들의 통치자를 황제라 부르지 않고 천왕 텐노라고 부른다. 그들은 “텐노”라는 단어를 말할 때마다 머리를 숙이거나 모자를 벗는다. 그들은 그를 국가의 황제와 왕들과 함께 분류하지 않는다. 그는 그들 중 으뜸이며 우월한 존재다. 그의 신성함은 모든 공식 성명서, 모든 학교의 국가 역사에서 선언된다. 학자들, 철학자들, 변호사들, 작가들은 모두 이 모든 중요한 교리를 가르치고 설교한다. 고(故) 이나조 니토베 등 서구에서 교육받은 위대한 기독교 지도자들조차 일본의 통치자가 "천지의 육체적 대표자"라고 선언한다.

일본 신화에 따르면, 이자나기 신과 이자나미는 결혼하여 일본 열도를 낳았다. 그러므로 그 섬들은 지구의 다른 곳과는 다르다. 그리고 태양의 여신 아마테라스를 낳았는데, 그 직계 후손이 일본의 통치자가 되었다. 첫 번째 황제는 신 짐무 텐노였다. 일본 민족주의 성경에 일본 열도의 탄생과 관련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거룩한 부부인 이자나기와 이자나미는 다른 신들의 명령을 받아 높은 하늘의 다리에서 떠내려온 땅을 낳았고, 남자 신은 보석으로 장식된 창을 원시 소금물에 찔러 넣었다. 거기서 응고되면서 일본 열도가 형성되었고, 창으로부터 떨어진 물방울로부터 나머지 세계가 생겨났다. 그러므로 모든 나라들은 일본에 감사해야 한다. 왜냐하면 일본의 창조로 인해 세계는 그것의 존재에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모든 일본인들은 황제를 신이라고 믿도록 가르친다. 왜냐하면 그는 이 신성한 종족인 야마토에 속하기 때문이다. 모든 아이들은 (1) 일본의 황제가 유일하고 (2) 일본은 유일하고, (3) 일본 국민은 유일하고, 따라서 일본이 세계의 빛임에 틀림없다는 믿음을 가지고 자란다. 전투에서 죽는 병사, 즉 황제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애국자는 자동적으로 완전한 신이 되어 연화천국에서 신들의 대가족과 합류하게 된다. 

이른바 제국유전학(Imperial Genalogy)은 약 700년에 발명되었다. 그리고 불과 70년 전에 완성되었는데, 이때 쇼군주가 폐지되고 황제가 권좌에 복귀하였다. 그 이야기가 어떻게 유래되었는지는 일본인들에게는 거의 중요하지 않다. 그들 모두 그들의 황제, 그들의 땅, 그리고 그들의 백성들의 신성을 믿는다. 의심할 여지 없이 이것은 일본 인종의 이면에 있는 위대한 단결력과 원동력이다. "일본인 각자 자신에게는 중요하지 않지만 모두 전능하다."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니다. 그것은 그들의 미카도(Mikado)의 지배하에 있는 세계 지배에 대한 그들의 주장의 근간이다. 그들의 미카도는 유일한 천왕이기 때문에, 논리적인 결론은 그가 우주의 유일한 정당한 통치자이며, 그의 군대와 해군을 보내 세상을 구한다는 것이다. 모든 하늘에는 오직 하나의 태양이 있어야 하고, 이 모든 평범한 구에는 하나의 통치자가 있어야 한다. 그토록 바라던 세계평화는 일본의 주권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 '아시아의 새로운 질서'를 확립하는 것은 일본의 하늘이 정한 사명이고, 그렇기 때문에 "극동지역에서는 일본만이 유일한 안정 세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곧 '아시아의 새로운 질서'를 '새로운 세계 질서'로, '극동의 안정적 권력'을 '지구 전체의 안정적 권력'으로 확대할 것이다. 일본 군사 교과서에 따르면, "영원하고 절대적인 명령을 받았다"라고 되어 있는 짐무 천황의 칙령에는, "우리는 전 세계를 혼란과 파멸로부터 구하도록 하늘의 명령을 받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수도를 우리의 영토 전체에 건설할 것이다"라고 되어 있다...

종교적으로 우리는 이미 외국 선교사와 기독교 교회를 상대로 황제 숭배를 최고의 민족 종교로 자리매김하려는 운동을 보았다. 이 전쟁은 감시되지 않고 방치되는 한, 그들의 지배하에 있는 모든 지역에서 일어날 것이다. 그들의 인생철학에는 오직 하나의 최고 종교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제안된 새로운 질서는 종교의 자유를 반대하는 운동이다.

정치적으로 자유와 평등의 민주적 사상은 일본 정부 제도와 정반대다. 천하에 속한 지배계급은 반드시 천민보다 높아야 한다. 이 자연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개인의 자유는 용납될 수 없다. 

미국에서와 같이 한 국가의 최고 통치자를 비난하는 것은 일본에서는 들을 수 없는 일이다. 개인의 권리를 인정받는 행위의 일환으로 파업을 하는 행위는 국가의 사회경제적 삶에 있어서 악으로 간주된다. 국가원수를 '공무원'이라고 부르고, 백궁 대신 관저를 '백악관'이라고 부르는 것은 혼란과 무질서의 조짐이다. 이것과 다른 많은 것들은 반드시 파괴되어야 하는데... 이런 의미에서, 일본의 십자군원정은 미국 정부의 민주주의 체제에 대항하여 행해지고 있다....

그러나, 도쿄의 군주들은 그들의 군대의 무능력함과 통치자들의 신성을 과신하면서 그들의 계산에 있어서 하나의 중요한 요소를 간과해왔다. 그들은 자신들이 정복한 민족의 가슴 속에 무의식적으로 만들어낸 저항의 잠재된 힘을 고려하지 못했다. 

2,300만 명의 한국인들이 그들 자신의 집 현관에 있는 오늘날 가장 작은 적이다. 무장을 하고 무질서한 그들은 야만적인 일본의 탄압과 탄압 방법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공공연한 반란을 일으켜 왔다. 그들은 1919년의 수동적 봉기 때 그랬던 것처럼 전국적인 혁명으로 다시 일어설 것이다. 

한때 자신들 사이에 절망적으로 분열되어 있던 4억5천만 명의 중국인들은 오늘날 일본인에 저항하는 한 사람으로 서 있다. 이러한 기적은 일본인들이 스스로 성취한 것이다. 중국과 한국이라는 두 나라는 세습 동맹이었고, 이제 그들의 동맹은 새롭게 바뀌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충분한 전쟁 기계와 전쟁 물자 공급이다. 그들이 싸울 무기를 가지고 있는 한, 그들은 일본인들을 돌볼 수 있다는 것은 이미 증명되었다.

이 거대한 인간의 힘의 물자를 공급함으로써 활용하는 것은 태평양에 관한 한 미국을 전쟁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것이다. 미국에 대한 일본의 노골적인 전쟁 위협은 엄포에 불과하다. 그들은 미국과 전쟁을 벌이는 것이 자살 행위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으며 영국과 중국은 양끝에서 축선을 위협하고 있다. 중국에 대한 적절하고 지속적인 물질적 지원은 이제 의심할 여지 없이 일본이 더 이상의 정복을 고려하기 위해 너무 깊이 몰두하게 만들 것이다. 지금까지 미국 사람들에게 경고하려고 노력했던 "아마게돈"은 그래서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제11장에서는 “그들은 성공하면 할수록 더 위협적이 되어, 이따금씩 대담하게 이렇게 말했다. "미국인들이 일본의 국가적 취약성을 존중하지 못하면 '엄청난 결과'가 있을 것이다", "극동 문제에 개입하는 것을 단념하지 않으면 곧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꼭대기에서 ‘떠오르는 태양기’(일장기)를 보게 될 것이다." 미국인들은 대체로 그것을 선의로 받아들인 반면,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하며 아무런 관심도 기울이지 않았다”며 일본의 야망과 미국의 무관심을 적나라하게 파헤쳤다.

제12장에서는 “일본의 선전 책동은 반드시 저지되어야 한다”는 제목으로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미국에는 이름뿐인 많은 정기 간행물이 있다. 일본은 미국 대중을 오도하기 위해 매년 수백만 달러를 이 나라에서 쓴다. 모든 미국 언론인이 여론을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하고 거짓의 악랄한 외계인의 영향력과 싸우는 것을 애국적 의무로 만들지 않는 한, 미국은 정의롭고 지속적인 평화를 확립하는 데 큰 장애가 될 것이다.”

“일본이나 일본인이 점령한 지역의 검열 없는 뉴스는 거의 불가능하다. 일본 검열관이 통과시킨 서신에는 일본이 미국인들이 삼켜 주기를 바라는 설탕으로 코팅된 것이 들어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므로 뉴스를 읽는 대중에게 그 안에 숨겨져 있는 독을 노출시키지 않고 다가가는 것이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

이승만 박사는 “대한민국의 독립이 보전되고 주변국들이 한국인을 억압하지 않도록 조치해주기 바란다”는 호소의 글과 더불어, 태평양전쟁을 통하여 일본이 패망할 것과 대한민국이 독립국가가 되어 나아가야 할 방향인 건국 이념을 제시했다.

또 제13장의 “미국의 평화주의자들”과 제14장의 “평화주의자는 간첩과 같다”라는 제하의 글 속에서는 “당신들이 그토록 평화를 사랑한다면, 히틀러의 베를린, 미카도의 도쿄, 무쏠리니의 로마에 가서 평화를 설교하라. 전쟁은 여기 미국이 아니라 바로 그 곳에서 만들어지고 있다.”라고 이승만은 당시 미국의 평화주의자들인 반전주의자들을 비판하면서 “자유를 즐기는 사람은 많지만, 자유를 위하여 생명을 걸고 싸우려고 하는 사람은 없다”라며 전체주의자들에게 평화를 이야기하는 것은 간첩과 같다고 주장했다. 

13장을 시작하면서 그는 1934년에 평화를 사랑하는 미국의 어느 친구집에 가서 대화를 나누는 중에 “닥터 리, 만약 당신의 적들이 당신의 조국을 침략한다면, 당신은 무기를 들고 그들과 싸우기 위해 나가시겠습니까?"라는 질문을 받고 두번 생각할 필요없이 “당연히 그럴겁니다”라고 대답하자 그는 이 박사의 반응을 지켜보려는 듯 이 박사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당신은 군국주의자군”이라는 말을 하는 것을 들으면서 이승만 박사는 “이 나라의 광신적인 평화주의자들의 형편없는 의견”이라며 다음과 같이 밝혔다.

“나는 동양의 유교 철학자처럼 전쟁을 모든 문명인이 피하고 버려야 할 악이라고 비난하는 평화 옹호자들에 대해 높은 존경을 받곤 했다. 나는 종교적 신념이나 인도주의적인 원칙을 위해서 동료들에게 무기를 들기를 거부하는 "관념적인 거부자들"을 높이 존경한다. 그러나 국방이든 국가 명예든 국가 독립을 위해서든 어떤 종류의 전쟁에도 반대하는 저 호전적인 평화주의자들은, 무의식적으로 국가를 위해 재난을 자초하고 있다. 

그들은 전쟁을 일으키는 나라들이 공격적인 전쟁을 하는 것을 막기 위해 노력하지 않지만, 그들은 그들 자신의 비공격적인 국가가 방어에 대비하는 것을 막으려고 노력한다. 만약 미국인들이 그들의 조국이 싸운 모든 전쟁을 비난한다면, 그들은 워싱턴 기념비와 링컨 기념관을 파괴하고 그들의 귀중한 유산인 전쟁의 결과물인 모든 자유와 정의를 버려야 한다.

나는 평화로웠던 사람이었지만, 미국인으로부터 "군국주의자"라고 불리는 것은 참을 수 없는 모욕이었다. 나를 그렇게 불렀던 선량한 사람들은 내 한국에서의 경험을 알지 못했고, 어쩌면 그것은 그들이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들의 평화 아이디어를 말하는 그들의 일상적인 방법이었을지도 모른다. 

솔직히 말해서 내가 35년 전에 군국주의자였고 나머지 나라들이 군국주의 일본이 비군사주의적인 한국을 파괴하는 동안 방관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지금처럼 '나라 없는 남자'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인은 스스로를 도울 수 없었다...  만약 그들이 완전히 스스로를 도울 수 있다면, 왜 그들은 미국이나 지구상의 다른 나라들에게 그들을 도와달라고 요청해야 하는가? 친근한 도움이 가장 필요한 때는 언제인가? 그가 적보다 강할 때 그것이 필요한가?

평화의 왕의 제자들처럼 선한 기독교인들은 진정한 평화를 옹호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립서비스 평화주의자가 아니라 지구상의 평화와 인간에 대한 선한 의지를 가르치기 위해 이 세상에 온 헌신적이고 양심적인 그리스도의 추종자들이다. 만약 이 계몽되고 성결된 남녀들이 올바른 방향으로만 이끌어간다면, 이 혼란스러운 우리의 세계는 큰 혜택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들이 그 동안 쌓아온 평화구조는 취약한 토대 위에 놓여 있었다. 정의와 의를 추구하는 대신, 세속적인 지혜와 '현실적', '실용적', '실용적'으로 여겨지는 대중의 요구의 반을 충족시키기 위해 원칙을 절충하는 것이다. 그 결과 그들은 세상을 빛으로 인도해야 하지만 어둠을 따라갔다. 그렇다고 모든 기독교 지도자들이 맹목적인 지도자라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일본 정세와 관련해 일부 사실임을 부인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일본 군국주의자들이 한국을 통치하고 있을 때 감리교회의 가장 사랑받고 영향력 있는 지도자 중 한 명이며 유명한 기독교 주간지의 편집장이었던 미국의 L박사는 1905년 7월 어느 주일 아침에 뉴저지 주 오션 그로브(Ocean Grove, NJ)에 있는 감리교 강당에서 그의 최근 극동 관광에 대해 1만 1천명의 청중에게 말했다. 이 극동 관광은 당시 미국 내 여론이 한국의 파괴에 대항해 상승할 것을 우려한 일본인들이 그를 위해 마련한 것이었다.

이날 L박사는 "한국이 영원히 일본의 지배를 받기를 기원합니다. 아멘."이라고 했다.

(“May Korea be under Japanese rule forever and ever, Amen.")

다음날, 나는 우연히 오션 그로브에 갔다가 내 친구가 나에게 말한 것을 들었다. "나는 당신이 그 말을 들으면 기분이 나빴을 것이므로 당신이 어제 여기에 없어서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나는 Dr. L에게 긴 편지를 써서 “선교사는 정치 이야기를 하면 안되는데, 선교사로서 왜 그렇게 말을 했어야 했느냐?”, “자유와 평등한 권리에 대한 미국의 사랑, 그리고 모든 기독교 사상과 이상과는 반대로 정의, 자유, 인간성에 대한 미국의 생각과는 달리 왜 일본의 조약 위반을 변호하는 데 그토록 열심이었느냐”고 물었다.  다음날 아침 신문 1면에 내 편지의 사본이 실렸다. 그러나 Dr. L은 아무 답이 없었다....

선교사들이 정치에 관여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사실이고, 그들은 규칙적으로 정치에 관여하지 않는다. 한국 학생들은 처음에, 선교 위원회가 정치적 의미를 색칠할 수도 있다는 이유로 한국에서 고통받고 있는 기독교인들을 대변하는 것을 거절했을 때 실망했다. 그러나 학생들은 곧 그들의 입장을 이해했다. 

선교사들이 엄격히 중립을 지키는 한 불평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어떻게 중립을 지킬 수 있었을까? 그들은 집권세력의 선의를 지켜야 한다. 일본인들은 이런저런 방법으로 자신을 헌신할 수밖에 없다고 느낄 때까지 끊임없이 압력을 가했다. 기독교인들은 성경에 의해 자신들을 지배하는 그들에게 복종하고, 스스로 복종하도록 가르친다. 

비록 선교사들은 한국 기독교인들을 불쌍히 여겼지만, 그들은 일본의 통치자들에게 공공연히 반감을 가질 여유가 없었다.... 기독교인이 아닌 한국인들은 선교사들이 일관성이 없고 친일적이라고 비난했고, 선교사들은 그것을 반증할 방법이 없었다....

기독교인들은 평화주의가 현실로부터의 도피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경찰이 살인에 열중하는 불량배들을 진압해야 하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은 폭력 국가들에 대항하여 하나님께서 그들의 소유에 넘겨주신 것들을 변호하기 위해 칼을 뽑아야 한다...

미국인이 국가안보를 준비하는 데 있어서 사업을 의미한다면 국가정신을 일깨우고 교육제도를 개정하며 모든 시민과 모든 정당이 채택하고 지원하는 획일적인 국방정책이 필요하다.

애국주의는 당파를 초월해야 한다. 획일적인 국가 외교정책이 채택될 때, 모든 국민은 분단된 국가가 설 수 없기 때문에, 필요하다면 자신의 개인의 자유와 재산, 그리고 심지어 그의 생명을 기꺼이 희생해야 한다. 나라가 망하면 무엇이 남아 있는가.

마지막 “결론”에서 “결론적으로 극동의 전망에 대한 희망과 격려의 감정을 독자에게 남겨두고 싶다. 하지만 솔직히 미국과 일본이 갈등을 피할 수 있거나, 심지어 오래 연기할 가능성은 없다고 본다.”로 시작한 이승만박사는 가장 마지막 문단에서 다음과 같이 선포했다.

“한국이 일본의 권력욕의 첫 번째 희생자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한국의 사례를 본보기로 제시하는 것이 나의 임무였다. 대한민국의 운명은 세계의 자유민족의 그것과도 분리될 수 없으며, 한때 자유를 알고 잠시나마 상실했던 그 많은 민족과도 분리될 수 없다. 

마침내 - 아마 우리가 감히 희망하는 것보다 더 빨리- 세계의 자유민주주의 세력은 일본인들을 그들의 섬에 다시 밀어넣을 것이며, 태평양에  다시 평화가 찾아올 것이다. 그 날, 한국은 자유의 대열에 다시 합류할 것이고, 또 다시 ‘고요한 아침의 나라’로 알려지게 될 것이다.”

▲1942년 <일본 내막 벗기기>(Japan Inside Out)가 일본의 진주만공격으로 현실화되자 베스트셀러가 되어 얻은 수입으로 워싱턴에 처음 장만한 집에서의 이승만박사

당시 미국에서 “독립에 미친 늙은이”라는 별명이 붙을만큼 대한민국의 독립에 혼신의 힘을 쏟아온 이승만 박사의 선견적 지혜와 그것을 이끌고 가기 위해 필요한 카리스마적 리더십으로 인해 한국이 독립국가가 되었고 기독교 국가로 건국된 사실을 망각하거나 시기하는 수많은 이들은 그를 깎아내리는 데 온 힘을 기울여 왔다. 그들은 공산주의자들에게 철저히 속아왔기 때문이다.

이승만은 루즈벨트 대통령과 엘리노어 여사, 스팀슨 육군장관, 헐 국무장관, 홉킨스 백악관 보좌관 등에게 이 책을 보냈고 미국이 콧방귀를 뀌는 동안 일본은 미국 침략 준비를 갖추고, 이 책이 나온지 불과 몇 개월 후인 1941년 12월 7일(현지 시간) 이승만의 예언대로 하와이의 진주만 공격을 감행했다. 

이승만 박사는 이 책에서 일본이 미국의 하와이나 알래스카를 공격할 것이라고 했다. 이 책이 출간되고 일본으로부터 진주만 폭격을 당한 미국은 그의 세계 정세를 보는 통찰력을 인정하게 되었고, 이로서 대한민국의 독립을 결정짓게 한 계기가 되었으며 단번에 이책은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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