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신배 교수의 구약이야기(158) - 아모스(10)

박신배 교수 / 연세대 구약학 박사, 현 그리스도대 구약교수, 창조문학 편집위원, 한국 평화학회 전 부회장, 한국 구약학회 전 부회장, KC대 전 총장

“너희는 살기 위하여 선을 구하고 악을 구하지 말찌어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말과 너희와 함께 하시리라”(암5:14).

 

번영의 시대를 맞았지만 공의가 사라진 나라

아모스서 연구가 여기서 이제 대단원의 막이 내린다. 아모스서는 선지서 세계의 문을 여는 책과 같아서 고전 예언서(Classical Prophets)의 두 축이 되는 책이다. 한 축은 호세아서이다. 이 둘은 클래식 음악의 헨델과 바하,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관계처럼 짝을 이루어 예언 세계를 잘 보여준다. 아모스의 결론은 정의다. 이 정의와 공의의 선지자로서 아모스는 이스라엘의 살 길을 제시하고 있다. “너희는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며 성문에서 공의(미쉬파트)를 세울찌어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혹시 요셉의 남은 자를 긍휼히 여기시리라”(암5:15). ‘요셉의 남은 자(쉐엘리트)’를 긍휼히 여기셔서(예헤난) 구원하실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또 본문에서 말한 것처럼 “너희와 함께 하시리라”(아도나이 엘로헤 체바오트 이트켐). 임마누엘의 하나님이 구원을 위한 예언을 선포하게 하신다고 말씀하시고 있다. 구원이 일어나는 현실이 무엇이며 그 전환점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오늘 우리의 현실에서 이것이 가능할까?

아모스는 처녀 이스라엘이 몰락한다는 사실을 예언한다. 그러나 북이스라엘의 멸망 궤도를 바꿀 수 있을까? 예후는 종교혁명을 통해 바알·아세라 우상과 우상을 섬기던 사람들을 숙청한다. 그리하여 종교개혁가로서 행적을 기록한다. 그래서 신명기 역사가는 그를 칭찬을 한다(왕하9:7-10). 예후의 쿠데타는 엘리야와 엘리사가 예언한 바, 아합 집의 악행과 종교적 타락으로 인해 진멸(헤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바알 신을 좇는 왕과 백성들은 심판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 때에 남 왕국에서는 요아스가 아사 왕을 이어 종교 개혁을 한다. 바알 성전을 무너뜨리고 섭정을 했던 아달리야와 바알제사장 맛단을 죽인다. 그래서 열왕기하 기자는 요아스를 칭찬한다(왕하12:1-3). 예후는 종교 개혁을 잘 시행했지만 외교 정책의 문제에 맞아 잘 행하지 못함으로, 시리아와 팔레스틴으로 침공한 앗시리아 살만에셀 3세에게 조공을 받치고 위기를 벗어나야 했다. 그 후에 예후 왕조의 전성시대를 연 여로보암 2세는 경제적으로 번영을 구가하고 솔로몬 시대에는 못 미치지만 정치적으로 영토를 확장했다(왕상8:65). 이 번영의 시대에 북 이스라엘은 종교적 타락을 하게 되어 나라가 망하는 불운을 가지게 된다. 이스라엘이 궁전을 짓고 사마리아 성을 확장해도 공의와 정의가 사라지고 폭력과 압제가 있는 도시가 되어 버린다. 아모스는 이를 지적하며 예언 선포를 한다.

“아스돗의 궁들과 애굽 땅 궁들에 광포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사마리아 산들에 모여 그 성중에서 얼마나 큰 요란함과 학대함이 있나 보라 하라 자기 궁궐에서 포학과 겁탈을 쌓는 자들이 바른 일 행할 줄을 모르느니라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암3:9-10).

 

한반도여 돌아오라! 공의와 정의를 세우라!

역사는 되풀이되는 속성이 있나보다. 개혁의 정신으로 일어난 영웅이 나라의 권력을 잡고 통치하지만 어느 순간 지도자가 하나님의 법을 잊어버리고 인간적인 방법과 정치적인 술수로 정치를 하다보면 또 멸망의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구원 사건, 출애굽의 신앙을 잊어버렸다. 출애굽의 언약과 신앙 전통을 가지고 있는 북 이스라엘이 그만 그 신앙 정신을 놓친 것이다. “내가 아모리 사람을 저희 앞에서 멸하였나니 그 키는 백향목 높이와 같고 강하기는 상수리 나무 같으나 내가 그 위의 열매와 그 아래의 뿌리를 진멸하지 아니하였느냐 내가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이끌어 내어 사십년 동안 광야에서 인도하고 아모리 사람의 땅을 너희로 차지하게 하였고”(암2:9-10). 그러면 다시 하나님은 당신의 종을 보내서 경고하고 회개를 촉구하고 돌아서기를 기다리신다(암2:11). 드고아에서 온 목자, 아모스는 북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하여 주님이 보내신 종이었다. 이스라엘이 본질인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잊어버리고 타락하니 심판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다시 이스라엘이 회개하고 개혁할 수 있는가? 오늘 계속하여 돌아서라고 아모스는 선포하고 있다. “사마리아 산에 거하는 바산 암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는 가난한 자를 학대하며 궁핍한 자를 압제하며 가장에게 이르기를 술을 가져다가 우리로 마시게 하라 하는도다”(암4:1). 아모스는 예언을 통해 하나님의 주권, 열방에 대한 여호와의 주권을 선포하며 세계를 통치하시는 분이심을 밝힌다. 결국 열국의 서 너 가지 죄를 말하신 후(암1:3-2:3) 이스라엘의 죄 심판을 선포하신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스라엘의 서너가지 죄로 인하여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저희가 은을 받고 의인을 팔며 신 한 켤레를 받고 궁핍한 자를 팔며 가난한 자의 머리에 있는 티끌을 탐내며 겸손한 자의 길을 굽게 하며 부자가 한 젊은 여인에게 다녀서 나의 거룩한 이름을 더럽히며 모든 단 옆에서 전당 잡은 옷 위에 누우며 저희 신의 전에서 벌금으로 얻은 포도주를 마심이니라”(암2:6-8).

이 현상은 오늘날도 똑같이 되풀이 되고 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과 약속을 잊어버리고 죄의 길로 들어서서 죄가 죄를 낳는 결과 서너가지 죄가 쌓이고 쌓인 것이다. 돌이킬 수 없는 순간까지 이르러 병적 상태가 심각해진 것이다. ‘공의(공법)가 물같이 흐르고 정의를 하수같이 흐리게 하기’를 바랬지만(암5:24), 이스라엘은 그렇지 못한 것이다. 그래도 ‘요셉의 남은자’가 있어서 긍휼과 은혜를 입어서 그나마 돌아올까? 오늘도 우리 주님은 애타게 기다리며 집나간 탕자가 돌아오기를 고대하고 있는 것이다. 아모스는 우리에게 그 가능성을 촉구하고 있다. 한반도여 돌아오라! 사랑하는 자녀들아 공의와 정의를 세우라!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저희가 즐거워하더라”(눅15: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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