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자연을 사랑하는 음유시인 (吟遊詩人)

             장영생

지나가던 바람이
허락도 없이
내 볼을 만져도
싫지않을 때

계곡에 엉겨 붙은 
얼음 아래로
재잘거리는 노래가 들릴 때

따뜻한 햇살 눈치 챈
꽃망울이
얼굴 보이려 벌게질 때

생활에 눌린
가장의 외투가 무거워져도
어울리는 옷이
준비되지 않았을 때

일반적으로 문학을 장르별로 구분할 때 시, 소설, 수필, 희곡 등으로 나눈다. 김동리는 “문학이란 언어가 문자를 통해서 미적(美的)으로 구성된 것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인복은 <문학의 이해>에서 “문학이란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예술적 표현으로 묘사한 언어의 기록”이라고 말했다. 문학은 인간의 정신적 영역을 다루는 언어적인 작업이기도 하다.

<문학비평용어사전>(이상섭 지음, 민음사, 1980)은 ‘문학’이라는 항목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동양에서 문학이라는 낱말이 , 문예, 언어예술, 의미예술 등의 뜻으로 쓰인 것은 서양문물에 접하고 나서부터다. 문학이란 문자 그대로 하자면 <글공부>란 뜻밖에 없다. 서양의 리테라투라(literatura)란 말도 본래는 글로 쓰여진 것, 즉 문헌, 특히 어떤 학문분야에 관련된 문헌을 뜻하는 말이었다가 19세기에 이르러서 비로소 현재의 의미를 갖게 되었고, 그 전에는 포에시아(poesia) 즉 ‘시’라는 말을 현재의 ‘문학’에 해당하는 말로 썼었다. 동양에서도 문학에 해당하는 말로서 시, 시문(詩文)이라는 말을 썼었으니, 동서양을 막론하고 문학은 시라는 다소 한정된 개념을 갖고 있었다.”

문학의 주제는 인간의 체험이다. 문학은 체험에 대한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다. 문학은 기계를 조립하기 위한 설명서라기보다는 기계 그 자체의 그림이다. 문학은 체험을 재창조하는 것이다. 문학은 인간 경험뿐만 아니라 그 경험에 대한 해석도 제공해 준다. 문학도 다른 학문이 다루는 것과 같은 주제들(자연, 사회, 신, 인간)을 다룬다. 문학이 다른 학문과 구별되는 것은, 문학은 이런 주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관심을 끌고 ‘사람에게’ 가치 있는 것으로 본다는 것이다.

리렌드 라이켄 교수는 말하기를 “문학 작품은 삶의 한 선택적 측면으로 우리의 생각을 집중시켜서, 그것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분명하게 해주는 것이다”라고 했다. 종종 문학은 우리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경험이나 관점을 형상화시켜 준다. 문학은 다른 예술과 마찬가지로, 상상력을 통해 시공을 벗어나 여행을 하면서 보고, 배우고, 즐길 수 있게 해준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우리는 더 성숙한 모습으로 보고 배우고 즐길 수 있게 된다. 한마디로 문학은 우리를 넓혀 준다.

환상적 작품의 저자이기도 한 루이스(C. S. Lewis)는 이 점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우리의 존재를 확장하기 위해 애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넘어서고 싶어하는 것이다. 본성적으로 우리 모두는 자기 자신의 독특한 관점과 선별 기준을 가지고 있어서, 그 입장에서 전체의 세계를 본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입장에서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눈으로 보고, 다른 사람의 상상력으로 상상하며, 다른 사람의 마음으로 느끼고 싶어한다. 우리에게는 바라볼 창문이 필요하다. 이것은, 내가 아는 한, 문학이 가진 특이한 가치요 이점이다. 왜냐하면 문학은 우리 아닌 다른 사람의 체험으로 우리를 인도해 주기 때문이다. 나 자신의 시각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다른 사람의 시각을 통해서도 보아야 하는 것이다.”(리런드 라이켄, 기독교와 문학,23-24쪽)

우리는 한 편의 시를 읽고 생각하면서, 인간 경험의 어떤 측면을 의식하게 된다. 예를 들면 시인은 우리로 하여금 자연이 가진 다면적 아름다움을 의식하도록 함으로써 우리 자신을 풍부하게 해주는 것이다. 우리는 시를 읽으면서 우리 주변 사람들과 자연에 대한 각성된 의식을 갖게 된다. 시를 감상할 때 우리는 사람들의 기쁨과 슬픔, 그리고 고뇌와 환희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한 편의 시에는 하나의 인생관이 담겨 있다.

장영생 시인은 많이 걷는 시인이다. 그의 여러 시들은 그가 산행의 발자취를 보여준다. <송년 산행>, <해맞이 산행>, <봄 산행>,<가을 산행> 같은 시들이다.

 

알몸을 드러내고도

부끄럼이 없는 겨울산은

욕심을 품지 않는다

큰 품으로 주는 따뜻함은

깊고 넓은 계곡을

얼음으로 덮지 않고

얕고 좁은 여울엔

살얼음으로 숨구멍을 연다

-송년 산행(부분)

 

시인은 걸으며 생각하고 시심(詩心)을 가꾼다. 한 해를 보내면 산에 오르면서 겨울산의 풍광만 보지 않는다. 마음의 눈으로 보면 겨울산은 “알몸을 드러내고도/부끄럼이 없는” 산이다. 욕심을 품지 않고 “큰 품으로 주는 따뜻함은/ 깊고 넓은 계곡을/ 얼음으로 덮지 않고/ 얕고 좁은 여울엔/ 살얼음으로 숨구멍을 연다.” 시인은 걸어가면서 본다. 봄은 보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사물과 현상을 꿰뚫어 볼 때 얻는 통찰(insight)을 시로 풀어내고 있다.

<해맞이 산행>에서 시인은 “해돋이를 만나려는 의지는/ 코끝 베가는 매서움을 녹이고/ 고희를 앞둔 묵은 다리도/ 첫 태양 앞에 담담하게 서 있다”(마지막 연)라고 말한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산행도 쉽지 않지만 해돋이를 기대하는 마음은 새해 첫 태양의 찬란한 빛을 고대하게 만든다.

시인은 계절마다 산을 찾는다. <봄 산행>은 계절의 변화를 노래하면서, 시인을 맞아하는 목련과 진달래에 눈을 맞추고 감장이입을 한다.

“제 몸 녹는 소리로/ 계곡이 소란스러우면/ 늦장 부리던 겨울도/ 미련을 접고 돌아 선다/ 슬그머니 내민 푸른 이파리 // 달빛 품은 목련/ 수줍은 진달래/ 살랑이며 반갑다고/ 겨우내 감았던 눈/ 바지런을 피우고/ 싫지 않은 꽃샘잎샘/ 춘정이 살아나니/ 가다 서고/ 오르다 멈추고/ 봄 산 오르기는/ 마음대로 안 되는구나”

산행은 시인에게 자연이라는 스승을 선물한다. <숲 속 친구들>과 친밀한 관계를 맺게 되니 ‘혼자 오르는 산행’도 외롭지 않다.

짹짹거리며

산 입구를 지키는 작은 산새들

산비둘기 구구구구

본 무대로 부르니

깍깍대며 질러대는 까마귀는

공연의 시작

 

야트막한 계곡은 졸졸졸

높은 계곡은 절정을 못이긴 합창

산바람이 흔드는 숲 마당

나뭇가지마저

느릿느릿

흔들흔들

춤판으로 유인하는 피톤치트

한차례 불다가

숨을 고르는

몫 좋은 고갯길 지키던 바람

 

떼 지어 기다리는

숲 속 친구들

혼자 오르는 산행도 외롭지 않습니다

-<숲 속 친구들 >(전문)

그러면 시인에게 ‘자연’은 무엇인가? “오는 이에게/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빠른 걸음도/ 느린 걸음도/ 탓하지 않는/ 가진 것으로 쉬게 하는 산”이요, “세상 일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것과/ 어려운 일도/ 만날 수 있다는 것을/ 소리 없이 말하는 산”이다.

또한 “오는 걸음은 숲으로/ 가는 걸음은 건강으로/ 약속은 없어도/ 빈손으로 보내지 않는/ 흉내 낼 수 없는 넉넉함/ 부르지는 않아도/ 언제나 기다리고 있는 산”((산 1, 부분)이다.

따라서 그의 산행은 자연 사랑으로 끝나지 않는다. 산으로 대표되는 자연만물은 그의 스승이고, 삶의 내비게이션이기도 하다.

시인은 삶의 소소한 일상에서 깨달음을 얻는다. 평범하게 보이는 사물에서도 지혜의 빛을 발견하곤 한다. 어떻게 이러한 발견이 가능할까. 김승옥은 말하기를 “글을 쓴다는 것은 밖의 것을 받아들여(impression) 자기의 마음이라는 필터에 걸러낸 후, 밖으로 뱉어 놓는 것(expression)을 말한다. 받아들이는 것이 없이는 결코 나올 수가 없는 것이다...무엇을 쓴다는 것은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니다. 일상사에서 일어나는 각자의 느낌, 작은 것을 세밀하게 관찰하여 거기서 오는 새로운 발견이, 바로 글의 시작이 되는 것이다”라고 했다.

‘박학이독지 절문이근사(博學而篤志 切問而近思)’라는 말이 있다. 유가(儒家)의 학문관은 먼저 박학(博學)을 권하고 있다. 사람다운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전인적 지식이 필요함으로 폭넓은 교양을 갖추기 위해 널리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한 가지 전문분야에 정통할 것을 요구하는 오늘날의 학문관과는 다르다.

다음으로 절문(切問)을 말한다. ‘절문’이란 배움에 갈망하는 적극적인 열의를 말한다. 그리고 근사(近思)란 높고 먼 고차원적인 생각이 아니라 가까이 있는 것에서 생각의 실마리를 풀어가는 것을 말한다. 고전인문학자 고미숙은 이렇게 말했다. “소박하고도 근원적인 질문들로부터 도망가지 말자.” 이명희 시인은 말하기를 “깨끗이 살아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좋은 시를 쓴다는 것은 더욱 쉬운 일이 아니다”라고 했다.

장 시인은 세밀하게 관찰하는 눈을 갖고 있다. 이것은 시인에게 있어서 소중한 덕목이다. 관찰은 문학인과 과학자 모두에게 필요한 덕목이기도 하다. 이제 시인의 길에 들어선 그는 더 밝은 눈을 소망할 것이다. 첫 시집을 상재(上梓)하는 장 시인을 축하하고 앞으로 내놓을 시편들을 기대한다. 송광택(시인, 한국교회독서문화연구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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