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식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역사하시는 하나님

최종인 목사, 평화교회담임, 성결대, 중앙대석사, 서울신대박사, 미국 United Thological Seminary 선교학 박사, 공군군목, 성결대학교, 서울신학대학교 외래교수

갈릴리바다에서 항해하던 제자들이 있었다. 매우 숙련된 뱃사람들임에도 풍랑을 만났을 때 어찌할 줄 몰라 당황해했다. 광풍 앞에서 한없이 약해진 그들은 예수님이 안 계시면 자신들이 무력하고 무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지금 우리 인생 앞에 폭풍이 있다면 그것은 주님을 체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하나님께서는 풍랑과 같은 위기를 보내실 때가 있다. 위기를 만날 때 성도는 어떤 유익이 있는가?

인생의 거친 풍랑과 같은 위기를 만날 때 선택의 갈림길에 선다. 믿음의 반응을 보일 것인가 아니면 믿음에서 떠나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불신의 반응을 보일 것인가? 믿음이 없는 사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불신의 반응을 보인다. 그러나 눈을 들어보면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이 계신다는 것을 확실히 발견할 수 있다.

『Jesus walking on the Sea of Galilee』, Paulus Bril(1554-1626)

인간은 평안한 생활 중에 하나님의 실존을 깨닫기 어렵다. 눈앞에 온갖 유혹과 시험에 빠질만한 것들을 많아 가져다 놓아 사람들이 체험하지 못한다. 시편 93편은 익명의 저자가 하나님의 왕권을 찬양하고 있다. 불과 5절에 불과하지만 위대하신 하나님을 높이며 찬양한다. 바로 우리 성도들이 그렇게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 신앙의 기본 중 기본은 “하나님이 계신가?”란 질문에 “아멘”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땅을 다스리신다(1절).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영역 가운데 우리 인생도 포함되어 있다. 하나님께서는 예나 지금이나 동일하게 살아계셔서 우리를 다스리신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역사하신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역사하신다. 인생의 위기는 우리가 연약한 존재들이며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한 존재임을 발견하게 한다. 1절에서 하나님을 소개한다. 하나님은 스스로 권위를 입으시고, 능력의 옷을 입으신다. 띠를 띠셨으므로 세계도 견고히 서서 흔들리지 아니한다. 하나님으로부터 창조된 피조물들은 하나님이 붙들어 주셨으므로 견고할 수밖에 없다.

태풍이 불어 집이 흔들리고 나무들이 넘어간다. 간판이 떨어지기도 한다. 그런 태풍을 다스리시고 잠잠케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3절에는 큰물을 세 번이나 언급하고 있다. 보통 히브리어에서는 강조하거나 최상급 표현을 하려면 두 번 또는 세 번 같은 단어를 언급한다. 세 번 되풀이 하는 것은 강조를 넘어 최상급이다. 즉 큰물이 어마어마한 세력으로 덮친다는 것이다. 여기서 큰물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만난 대적들을 의미한다. 오늘날 성도들에게는 큰물은 인생의 위기일 것이다. 이스라엘이 만난 대적들과 우리 인생이 경험하는 위기는 하나님 앞에서는 쩔쩔매고 말 것이다. 인생 중에서 위기를 만났는가?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할 기회로 여겨야 한다.

위기의 순간이 오면 인간은 절망감을 느낀다. 그리고 절대자의 구원을 기대한다. 바로 위기의 순간이 올 때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시고 크신 능력으로 구원하심을 경험할 것이다. 4절에 “높이 계신 여호와의 능력은 많은 물소리와 바다의 큰 파도보다 크다”라고 고백했다. 이스라엘의 지난 역사를 볼 때 하나님께서는 능력으로 물소리와 파도를 이기게 하셨다. 오늘의 인생들이 경험하는 많은 위기에서도 구원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영원토록 견고하시다신다(2절). 문제는 오늘의 성도들이다. 그 크신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면서도 오늘도 우리는 낙심하고 넘어진다. 과거에 큰 죄와 허물로 인해 자주 넘어진 인생이 아닌가?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의 구원하심으로 바로 서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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