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시민운동단체 ‘샬롬을꿈꾸는나비행동’(이하 샬롬나비, 상임대표 김영한 박사)은 지난 1월 19일 "문재인 정부는 국가운영을 종북주의적 좌편향에서 헌법적 가치로 돌이키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샬롬나비는 2010년 창립되었으며, 실천의 장과 이음새를 만들기 위해 개혁주의실천협의회를 자매기관으로 두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국가운영을 종북주의적 좌편향에서 헌법적 가치로 돌이키라>

 

자유주의적 좌파들은 종북주의적 좌파들과 결별하고 대한민국의 헌법적 가치를 지키자.

자유주의 국민들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체제를 지키기 위해 선거에서 심판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지금 종북 좌파들에게 권력을 빼앗기고 국가의 사회주의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전문가들의 우려는 지난 6월 이래 광화문 시위에 모여든 백만 애국 시민들의 주장과 맥을 함께 하고 있다.

우리 사회 좌파들 가운데 종북주의 세력들은 극소수이며 대다수가 자유주의적 세력들이다. 자유주의적 시민들은 대한민국의 헌법적 가치를 존중하고 합리적이며 개혁적이며, 이들 중 자유주의 좌파들은 우리 사회의 발전에 건전한 영향을 주는 자들이다. 이들은 종북주의 좌파들과 혼동되기도 하나 분명히 구분되어야 한다. 자유주의적 좌파들은 자유주의 사상을 섭취한 대부분의 지식인들과 젊은 청소년들로서 우리 사회를 수구적 국가운영에서 벗어나게 하는 개혁세력이기도 하다. 이들은 박근혜의 국정농단 탄핵정국 시 촛불 시위에 합류하였다. 문재인 정권이 촛불 시위에 힘입어 정권을 잡은 후 ‘아무도 가보지못한 국가’라는 종북주의적 국가주의로 나가자 자유주의 좌파들은 점차 문재인 정권의 정국 운영에 대하여 회의를 가지기 시작했다. 이제 자유주의적 좌파들은 대한민국이 헌법적 가치를 가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 경제의 두 축으로 나가고 한미동맹을 견고히 하는 방향으로 나가도록 개혁적 보수 세력들과 힘을 합해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들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이 나라를 헌법에 배치되는 방향으로 이끌고 있다는 주장이 집권 2년 9개월 차에 심각하게 나오고 있다. 대통령이 말하는 ‘아무도 가보지 못한 나라‘란 사회주의 연방제라는 주장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우리나라는 문재인 집권 후 세계 제일의 원전 폐기, 소득주도 성장, 주 52시간 근로제로 인한 영세 가게, 중소기업 파탄, 경제 침체 등 벌써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 있다. 지금 온 세계가 4차 산업혁명에 올라타려고 기를 쓰고 있는 이때에 대한민국만 정반대 방향으로, 오로지 패망하고 죽을 일만 찾아서 돌진하고 있다.

대한민국이 왜 이렇게 됐을까? 어찌하다 좌파 종북주의자들에게 정권을 넘겨주게 되었는가? 이를 생각해보니 저들 사악하고 음흉하고 어둠의 영을 가진 좌파 종북주의자들의 대한민국에서 준동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고 수십 년 동안 끈질기게 진행되어 왔다는 사실에 짐짓 놀라게 된다. 그 뿌리는 보통 단단히 박힌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집권하고 나서 노무현 대통령이 박은 대못을 뽑으려 하였으나 대못이 보통 깊이 박힌 것이 아니라고 하면서, ‘대못을 빼기가 쉽지 않다!’고 하던 일이 생각난다. 지극히 소수인 종북 좌파들이 어떻게 대한민국에 깊이 뿌리를 내리게 되었던가? 샬롬나비는 우리 사회에 뿌리 내린 종북주의 좌파 실태를 다음같이 고발한다.

1. 우리 사회의 대다수인 자유주의적 시민들은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기 위해 극소수인 종북주의적 좌파들과 결별하고 이들의 실체를 드러내어야 한다.

자유주의적 시민들은 지식인뿐 아니라 비기독교인들 가운데 많으며 이들은 서구의 합리적 자유사상을 존중하는 합리성과 도덕성을 가진 자들이다. 해방후 여태까지 72년 동안 대한민국의 공교육을 통하여 이들은 교육받았으며 3만 달러 국민소득을 이룬 대한민국 공교육을 받은 자들이다. 이들 중 자유주의 좌파들은 보수수구세력의 폐쇄성에 대하여 비판적이나 지극히 소수인 종북 좌파들(주사파와 민중혁명파)과는 사상적 계보가 다르다. 이제 자유주의 좌파들은 종북주의 좌파들과 그 정체성을 분리해 나가야 한다.

2. 우리 사회의 대다수인 자유주의 세력들은 극소수인 종북주의 좌파들의 음모와 준동에 속아 넘어가서는 안된다.

1917년 소련의 볼세비키 혁명도 노동자들의 봉기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소수의 레닌 혁명주의자(볼세비키파)들의 무력 쿠데타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이들은 무력 봉기를 통하여 정권을 탈취한 후에도 정국 주도를 하기 위하여 각종 음모와 테러를 자행했고 독재제체로서 공안을 유지했다. 이들이 각종 불법과 테러와 무력으로 쟁취한 공산주의 국가 소련에서 노동자들의 천국은 오지 않았다. 1989년 동구권의 민주화의 여파로 70년 만에 소련 연방은 해체되고 역사 속에서 사라졌다. 우리가 역사에서 배워야 할 것은 역사란 이념적 열정을 지닌 극소수에 의하여 이루어지고 다수는 이에 끌려간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이 이러한 처지에 놓여 있다고 우려한다. 대한민국의 자유주의 세력은 종북주의 좌파들의 위선과 선동과 언론조작에 속아 넘어가서는 안된다.

3. 상해임시정부에서 이동휘와 그의 계열들은 1917년 소련의 볼세비키 혁명 로선을 추종하였다.

이동휘도 기독교인이었으나 공산주의 사상과 당시 볼세비키 혁명에 심취하여 상해 임시정부를 소련 공산주의에 넘기려고 하였다. 이에 상해 임시정부의 최고 지도자인 기독교 사상가요 독립운동가인 이승만과 김구는 공산주의 추종을 반대하여, 이동휘 계열은 제지당하고 축출되었다. 이들 이동휘 계열의 좌익들은 자유민주주의보다는 공산주의 사상에 더 충성하는 자들이었다.

4. 1945년 해방정국에 있어서 박헌영을 비롯한 남로당 계열의 공산주의 좌파 세력이 남한 내에 혼란을 야기하였다.

박헌영이 월북한 뒤에도 이상현의 지리산 빨치산, 제주4.3폭동, 여순반란, 대구폭동, 정판사 위조화폐, 등등 공산세력은 3.8선 이남에서도 상당히 잔존하여 대한민국의 건국을 방해하고 신생 대한민국을 흔드는데 힘을 쓰다가 반공정책으로 인하여 점차 세력이 지하화하였다.

5. 1960년 4.19학생혁명이 일어나자 종북 좌파세력은 이틈을 이용하여 세력재개를 노렸다. 순진한 4.19 주도학생들은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외치기도 했다. 장면 정부는 종북 좌파소요를 막지 못하고 몰락했다.

6. 1961년 5.16군사혁명 세력이 반공을 국시의 제1로 삼자 종북 좌파들은 다시 지하로 숨어들었다. 그러나 소위 ‘민주화운동’에 편승하여 종북 좌파 세력은 자기의 때를 기다렸다.

7. 1987년 ‘6월 항쟁과 민주화’는 민주화에 편승하여 종북 좌파들이 정치세력화 하였다

6월 항쟁에서 대한민국 내의 민주세력들의 승리가 표면적으로 승리했으나 정치적 자유민주화는 내부적으로는 가만히 숨어들어온 종북 좌파들이 정치세력화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군사정부시절의 긴 기간 동안 지하에서 끊임없이 민주화라는 ‘양의 탈을 쓴 이리’가 되어 학생 학계 노동계 종교계 각계 각층에 침투한 종북 좌파들이 이제부터는 지하에서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지상으로 올라와서 재야 시민단체 노동계 예술계 학계 학생운동을 틀어쥐면서 합법적으로 정치에 참여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대한민국 정치판도가 실제에 있어서는 종북좌파들이 주도권을 쥐게 되었다. 1972년경부터 경제에 있어서는 대한민국이 북한을 앞서게 되었고 그 후 계속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으나, 사상투쟁에 있어서는 대한민국이 북한에 지게 되었다. 그때가 바로 1987년을 기점으로 보면 된다. 대한민국이 경제발전에 취하여, 자유에 대하여 민주주의에 대하여 강조하지 않았고 교육도 형식적인 교육에 지나지 않았다. 군사정권이 경제에는 강했으나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하여 약점을 지니고 있었던 것도 이유가 되었다. 그러나 노태우 대통령은 직선제로 당선된 사람이었고, 김영삼 대통령은 자유민주투사 출신이었다. 이런 도덕적 정당성을 가지고 ‘양의 탈을 쓴 이리’인 좌익 종북세력에 당당하게 맞서는 사상투쟁을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크다.

8. 1998년 2월 김대중 정부는 대북정책에 있에서 햇볕 정책을 서면서 종북 좌파들의 활동을 정책적으로 열어주었다.

김대중은 김정일과 정상회담을 하여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그러나 북한에 구축하여 놓은 인프라 300명의 명단을 선물로 김정일에게 넘겨주었고, 전교조를 합법화했으며 민주노총을 세워주었고 대북 햇볕정책을 실행하여 다 죽어가는 김정일 정권을 회생시켜주었다.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이토록 종북좌파에 의해 공산화될 위기에 몰리게 되는 초석을 김대중이 대통령이 됨으로써 놓은 것이다. 김대중은 선거유세를 하면서 ‘자기는 중도보수를 할 터이니 대통령 3수(修)하는 자기를 한번만 밀어달라’고 하는 호소했고 백성은 이를 용납해주었다. 그래도 김대중은 대한민국의 근본인 헌법적 가치인 자유민주주의 체제와 시장 경제의 근간은 존중했고, 국가를 IMF위기에서 구해낸 공이 있다.

9. 2003년 2월. 노무현정권이 들어선 것은 종북 성향이 대거 집권한 사례이다.

최초로 ‘반미’를 입에 올린 정권이다. ‘전시작전권 조기 이양’ ‘미국에 할 말은 하는’등을 내세웠다. 집권하자 청와대에서 ‘임을 향한 행진곡’을 부르면서 눈물을 흘렸다. ‘중도적 좌파’를 내세웠다. 그러나 노무현은 김대중보다 분명하게 친 공산주의적이고 종북적인 성향을 드러내었다. 어찌 보면 그는 공산주의자라기보다는 공산주의자들에게 이용당한 사람이라 하겠다. 그 스스로도 ‘당신들이 나를 이용해라’고 했다. 그 말로(末路)는 비참했다. 그래도 노무현은 미국과 FTA을 성사시켰고, 제주 해양 군사 기지를 구축했으며 헌법적 가치인 자유민주주의와 시장 경제를 존중했다.

10. 2008년 2월. 이명박정권이 10년 진보 좌파 정권을 청산하고 다시 보수우파정권을 회복했다.

이명박은 종북좌파계열이 박아놓은 대못을 뽑으려 했다. 그러나 실패했다. 임기가 시작되자마자 ‘광우병 난동’을 비롯하여 ‘효순 장갑차 사건’등 좌익 종북세력의 도전이 거셌고 끊임이 없었다. 다 거짓이었고 조직된 도전이었다. 그렇다면 경제는 잘 굴러가게 되어 있었으니 정치는 오로지 좌파 종북세력을 궤멸시키는 작업에 집중해야 하지 않았는가! 10년 좌파정권을 경험한 백성들이 마음을 모아서 이명박을 밀어서 압도적 지지로 대통령이 되었으면 종북좌파의 패악을 알고 가열차게 대못을 뽑아야 했다. 공산주의에 대한 이해가 이승만에 미치지 못했던 것일까? 이명박은 종북좌파의 대못을 뽑는데 실패했고 이것이 오늘날 대한민국의 종북좌익의 재집권으로 연결되고 그 자신도 죄도 없이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될 줄은 몰랐던 것이다. 종북좌파의 대못을 뽑는 것이야말로 그에게 주어진 시대적 엄중한 사명이었는데, 아마도 종북좌파에 대하여 깊이 알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또 하나 대통령이 되고 나서 선거대책위원장을 해준 박근혜를 품었어야 했다. 그런데 품지 못하고 각을 세우고 대립했으니 아쉽고 아쉽다.

11. 2013월 2월. 박근혜대통령은 이념적으로 분명했으나 측근 밀실정치로 대사를 그르쳤다.

박근혜는 자유민주주의 이념을 분명히 하고 개인적으로 깨끗했으나 최순실 국정농단으로 좌파들에게 틴핵의 빌미를 준 것은 국가 지도자로서 있어서는 안될 큰 실수였다. 박근혜는 개인관리에도 철저했다. 청렴했고 소신이 있었다. 좌익 종북세력은 역시 박근혜도 공격했다. 이번에는 좌파들이 언론까지 장악하고 있었다. 그리고 손석희의 태블릿피시 조작 등 엄청난 거짓과 조작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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