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희 목사의 CDN 성경연구】 (45) 환난(affliction)

 

NC. Cumberland University(Ph.D.), LA. Fuller Theological Seminary(D.Min.Cand.) , 총신대학교 일반대학원(Th.M.), 고려신학대학원(M.Div.), 고신대학교 신학과(B.A.), 고신대학교 외래교수(2004-2011년), 현)한국실천신학원 교수(4년제 대학기관), 현)총회신학교 서울캠퍼스 교수, 현)서울성서대학 교수 현)대광교회 담임목사(서울서부노회, 금천구)

우리는 인생에서 환난을 경험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환난의 성숙케 하는 성격을 인정할 때, 우리는 그 환난을 하나님의 우리를 향하신 사랑의 계획의 일부임을 볼 수 있게 한다.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는 것이 기대되고 있지만, 바울은 신자들이 환난 중에도 즐거워한다고 말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이것은 놀라운 진술인 것은 정확하게 환난은 뒤에 남겨지고 미래적 영화가 높이 평가되고 있기 때문이다. ‘유비무환(有備無患)’이라는 말이 있다. 중국의 고전인 ‘좌전(左傳)’의 양공(襄公)11년 조에 나오는 거안사위, 사직유비, 유비무환(居安思危, 思則有備, 有備無患:편안할 때에 위험을 생각하고, 생각을 했으면 준비를 하라. 준비를 해두면 환난이 없느니라.)이라는 말에 뿌리를 두고 있는 말이다.

가장 근본적인 의미에서 고난(환난)은 아담과 이브가 범죄로 인하여(롬 5:12, 19) 영원한 고난, 즉 되풀이되는 고통과 슬픔의 원인인 죄를 물려받게 되었다. 그리하여 일반적인 인간의 상황은 고난이다. 중요한 열쇠는 환난에 반응하는 방식이다. 우리가 행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이 그 환난들을 이용하시어 우리의 삶에 인내를 형성케 하신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참조, 2:7; 15:4-5). “날씨가 추워진 후에 소나무와 잣나무가 뒤에 시듦을 안다(歲寒然後 知松柏之後凋也)”는 논어 자한(子罕)편에 나온다. 역경에 처하여도 지조와 절의를 굽히지 않는 군자의 모습을 말한다. 환난에 해당하는 ‘들립시스’(θλῖψις)는 신약, 특히 바울 서신에서 ‘시련’으로 많이 나타난다. 이는 우리가 이 세상의 간난신고라고 부르는 것, 즉 아픔, 고통, 두려움과 좌절, 상실과 실망 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특별히 적대적인 세상의 반대와 핍박을 말하는 압력들이다.

신자들은 모두 환난을 당한다. 우리가 당하는 환난 또는 시련이 숯을 다이아몬드를 바꾸는 압력이다. 환난은 우리를 보다 온전하나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드는 하나님의 도구다. 욥이 4중고를 겪으면서 외친 고백이다. 하나님 내리는 말할 수 없는 압력이 자신을 순금으로 만들어가고 있다고 외쳤다(욥 23:10). 다이아몬드가 만들어질 때와 같은 온도와 압력을 흑연에 가해서 흑연의 구조를 바꾸면 다이아몬드를 만들 수도 있다. 이렇게 만든 다이아몬드가 인조 다이아몬드다.

이 괴로움은 스데반의 순교(martyrdom)로 일어난 환난처럼 실제적이다(행 11:19).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는 말씀처럼 불가피하다(요 16:33). 왜냐하면 예수님이 세상을 이겼기 때문이다. 바울은 사도로서 특별한 괴로움을 당한다(비교. 살전 3:3-4; 행 20:23; 고후 1:4-5; 골 1:24).

바울이 3차 전도여행 중에 AD 57년, 고린도에서 로마서를 썼을 것이다. 로마서의 독자들이 사는 고대로마제국은 국가적으로 또는 각 가정에서 다양한 신들과 함께 죽은 황제까지 신으로 섬겼기에 오랜 옛날, 유대인이 섬기는 신 하나쯤, 특히 그리스도교를 하나 더 받아들이는 건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로마서를 읽은 뒤 7년 뒤 여름, 로마 제국 제5대 네로 황제가 로마시의 로마 대화재의 방화범으로 그리스도교를 지목하여 책임을 덮여 씌움으로 실제적인 환난을 경험하게 되었다. A.D. 64년 대화재 때는 그리스도인들을 희생양 삼아 동물 가죽을 씌워 개들이 갈갈이 뜯어 죽이게 하고, 시신들을 십자가에 묶고 불을 붙여 밤을 밝히게 하는 끔찍한 잔혹성을 보였다. 베드로와 바울이 순교(martyrdom)를 당한다.

 

1. 시련 받는 사람이 더 아름답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의 에밀리 해빈크(Habinck) 박사는 미국 지질학회 추계학술대회에서 영양분이 부족한 토양에서 자라는 나무일수록 단풍이 더 붉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열악한 환경에서 더 붉은 잎을 띈다는 것이다. 시련 받은 단풍이 더 아름답다.

바울은 괴로움 또는 고통에 대한 역설적인 발언을 한다. 신약에서 여섯 곳에서 바울의 고난의 목록이 나온다. 육신적인 위험, 정신적인 고투, 영적인 장애 등의 다양한 어려움을 말한다. 바울의 고난은 ‘곤고함’(롬 8:35)에서 ‘주림’(고전 4:11)까지, 핍박(고후 4:8)으로부터 갇힘(고후 6:5)까지, 파선(고후 11:25)으로부터 곤란함(고후 12:10)까지의 넓은 범위를 가진다. 어느 한 가지도 즐거워할 것이라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바울은 누구보다 고난의 경험이 깊고 다양한 사도로서 로마교회에게 환난 중에 즐거워하고 인내하라는 주문을 할 수 있는가? 루스드라 사람들이 바울 선교사가 돌에 맞아 죽은 줄 알고 성 밖으로 던져 버렸다. 하나님께서 바울의 생명을 보존하셨다. 바울이 다시 루스드라에 들어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하다고 위로하였다. 이 때 가장 감동을 받은 사람이 있었다면 디모데라는 10대 후반의 청년이었을 것이다. 옵션이 아니라 필수과목이라면 즐겁게 이수해야 한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는 것이 상책이다. 만약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당하는 고난을 억지로 견디거나 불평 원망한다면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이다.

성적이 행복의 순서가 아니듯 행복 역시 돈과 비례하지 않는다. 사회학자 벤호벤은 “행복이란 개인이 자기의 삶을 얼마나 좋아하느냐의 문제다. 행복을 평가하는 객관적인 척도는 없다”고 말한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자발적으로 고난을 받는 사람, 복음을 위해 환난을 자초한 사람이 기뻐하고 즐거워한다. 의를 인해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기 때문에 핍박을 받을 때 즐거워하고 기뻐할 수 있다. 핍박이라는 사인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한 자라는 확신을 갖게 된다. 미국의 대중잡지 ‘애틀랜틱(Atlantic)’이 자신의 삶이 행복하다고 말하는 성인 1만명에게 심층 인터뷰를 하고 발견한 공통분모 10가지 가운데 인상적인 한 가지가 ‘남을 위해 땀흘려 일하는 즐거움을 안다’가 있다. 나를 위해 땀흘려 일하는 것은 즐거움보다 고역일 때가 많다. 하지만 자원해서 남을 위해 땀흘릴 때 느끼는 행복감 또는 만족감이 있기 때문이다. 남을 도우면 정신뿐 아니라 신체적으로도 긍정적인 변화가 나타나는데 이를 “Helpers’ high”라고 한다.

 

2. 환난을 즐거워하는 사람

다이아몬드는 빛의 보석이다. 루비가 불, 사파이어가 하늘, 에메랄드가 생명을 상징한다면 다이아몬드는 태고 이래의 순결한 빛으로 사람을 매혹한다. 다이아몬드는 그 어원이 ‘정복할 수 없는’이라는 뜻의 아디마-아스(adam-as)에서 왔다. 숯과 연필심을 만드는 재료인 흑연은 다이아몬드와 같은 탄소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 구성원소가 같다. 그러나 하나는 희귀한 보석이 됐고 다른 하나는 값어치 없는 흔한 숯이 됐다. 하나는 반짝반짝 빛나는데 하나는 새까만 모습일까. 다름 아닌 탄소 원자의 배열과 결합 질서가 다를 뿐이다. 결국 탄소 원자의 배열이나 결합 질서에 따라 고귀한 다이어몬드가 되기도 하고 하찮은 흑연덩어리에 불과하기도 한다.

숯과 흑연은 탄소 1개와 3개의 다른 탄소 원자가 평면으로 연결되어 있다. 다이아몬드는 탄소 원자 1개가 탄소 원자 4개와 결합하고, 다시 위아래, 앞뒤, 좌우에 있는 탄소 원자와 아주 단단하게 결합해 있다. 같은 원자라도 어떻게 연결되어 있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물질이 되는 것이다. 왜 이런 차이가 날까. 바로 열과 압력이다. 엄청난 열과 압력을 받으면 다이아몬드가 되고, 그렇지 않으면 평범한 숯이 되는 것이다. 다이아몬드는 보통 땅속 수백㎞ 아래 맨틀층에서 만들어진다. 지표면보다 압력도 크고 온도도 아주 높다. 이런 환경 속에서 탄소(C) 원자들이 수억 년에 걸쳐 특정한 분자 구조를 이루면 다이아몬드가 된다. 토마스 에디슨(Thomas A. Edison)의 말이다. “모든 사람은 다이아몬드 원석이다. 갈고 닦으면 누구나 빛난다.”

다이아몬드와 흑연은 분자 구조적 차이일 뿐이다

환난을 당할 때 즐거워한다고 하는 말은 무슨 말인가? ‘즐거워하다’에 해당하는 ‘카우카오마이’(καυχάομαι)는 대체로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자랑하다’(boast)이다. 우리가 환난 가운데 즐거워하는 것은 금지된 사람의 행위를 자랑하는 것이 아닌 한, 하나님은 이루어 놓은 선한 행위 때문에 찬미를 받으신다고 이해할 수 있다.

다윗은 고난 받은 것이 유익이라 노래했다. 고난을 통해 순종을 배울 수 있었으니 고마운 것이다(시 119:71).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의 규례를 배우게 되었다(시 119:71). 성경의 능력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시 119:50, 92).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깨닫게 되었다(시 119:75).

그리스도인들이 고난을 기뻐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금욕적인 업적은 아니다.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바울은 자신의 약한 것을 부득불 자랑하였다(고후 11:30). 여기서 약한 것은 고린도후서 11:23-27에 나오는 다양한 고난이다. 투옥, 태장, 파선, 각종 위험, 자지 못함, 추위와 배고픔 그리고 헐벗음 등이다. 바울이 이토록 약한 것, 즉 고난 받는 것을 자랑하고 기쁘게 받아들이는 이유는 무엇인가? 고난이 가중될수록 더 하나님의 은혜가 머물기 때문이다. 반대로 고난이 없으며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잘난 맛으로 살게 된다. 신자들은 고난을 당할 때, 즉 약할 때 기뻐하고 자랑하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바란다(롬 5:2).

조선 후기의 실학자 이덕무(1741-1793)의 사소절에 사람다운 삶의 길을 제시하는데 그 가운데 네 가지 못한 것을 자랑하고 있다. 필자와 같은 생각이라 소개한다. 바둑과 장기를 두지 못한다. 소설을 볼 줄 모른다. 이성에 대해 말할 줄 모른다. 담배를 피울 줄 모른다. 이 네 가지는 비록 죽을 때까지 못하더라도 해가 될 것이 없다고 말하였다. 바울은 세상의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기고 오직 십자가만 자랑하였다. 바울이 건넨 명함에는 바리새파라는 종파의 자랑, 가말리엘 문하에서 공부했다는 학벌의 자랑, 율법으로 흠이 없는 자라는 윤리의 자랑은 일체 내려놓고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자랑하고, 그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다가 받는 고난을 즐거워하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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