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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만 한 작은 구름, 1%의 희망 - 작자 미상 -


엘리야 시대에 이스라엘에 땅에 지독한 가뭄이 들었다. 3년 반 동안 비 한 방울 내리지 않았다. 그로 인한 백성들의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런 때에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가 갈멜산 꼭대기에서 자리를 잡고, 하늘을 우러러 비를 내려 주시기를 기도드렸다. 머리를 두 무릎 사이에 박고는 목숨을 건 기도를 드렸다. 기도드리며 사환에게 바다 쪽에서 비를 실은 구름이 떠오르는지 바라보라 하였다.

"그의 사환에게 이르되 올라가 바다 쪽을 바라보라 그가 올라가 바라보고 말하되 아무것도 없나이다 이르되 일곱 번까지 다시 가라 일곱 번째 이르러서는 그가 말하되 바다에서 사람의 손바닥만 한 작은 구름이 일어나나이다 이르되 올라가 아합에게 말하기를 비에 막히지 아니하도록 마차를 갖추고 내려가소서 하라 하니라"(열왕기상 1843-44)

사환이 일곱 번째 다녀와서 이르기를 "손바닥만 한 작은 구름"이 떠 오른다, 하였다. 이 말을 들은 엘리야는 왕과 백성들에게 비를 피할 채비를 하라 전하였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손바닥만 한 작은 구름"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읽고 하나님의 솜씨를 보게 된다.

행정가들이나 학자들, 기업인들은 90%의 가능성이 있을 때 움직인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들은 다르다. 개척자들은 다르다. 1%의 가능성에 인생 전체를 건다. 1%의 가능성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기도의 응답인 줄로 믿기에 그 1%에 자신의 삶과 미래를 던진다.

미국과 캐나다 사이에 나이아가라 폭포가 있다. 1,205m 거리에 다리가 걸려 있어 매년 2백만이 넘는 관광객들이 그 다리를 오가며 나이아가라의 장관을 본다. 그 다리를 놓을 때 모두가 불가능하다 하였다.

그러나 한 중소기업 사장이 가능하다면서 나섰다. 모두가 사장이 미쳤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 사장은 남이 보지 못하는 1%의 가능성을 보고는 그 1%에 자신을 걸었다.

비둘기 다리에 가는 실을 매어 폭포 위를 날아 건너편으로 날아가게 하였다. 비둘기가 돌아올 땐 좀 더 굵은 줄을 묶어 날아오게 하였다. 이러기를 반복하니 굵은 밧줄이 걸리게 되고 그 줄로 굵은 와이어를 연결할 수 있었다. 결국은 튼튼한 다리를 놓아 숱한 관광객들이 오갈 수 있게 되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손만 한 작은 구름에 삶 전체를 투자한다. 그 구름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사인이라 믿기 때문이다.

가만히 앉아 있는 사람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손바닥만 한 작은 구름을 보고 자신의 미래를 던지는 사람들의 손을 들어 주신다. 1%의 가능성을 보고 그 가능성에 자신을 던지는 사람들이 미래의 주인이 된다.

 


난도 함께 - 하정완의 후회 없는 최고의 삶에서 -


우리는 한국 교회가 추구했던 제자훈련의 실패,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인용하는 제자훈련의 원리로 디모데후서 22절이 있습니다. 이 구절은 어떤 사람을 제자로 삼아야 하는지를 가르쳐줍니다.

충성된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그 의미를 나와 함께 고난을 받자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란 것을 간과합니다. 고난과 희생을 빼고 가르칩니다. 제자훈련이 약화 된 이유입니다.

(디모데후서 21-3) 1 내 아들아 그러므로 네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속에서 강하고 2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저희가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3 네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을찌니

주님의 제자로 살아가는데 반드시 하나님의 초대가 있습니다. 그것은 고난이라는 훈련입니다. 고난 학교를 통해 하나님은 충성된 사람으로 만들어 가십니다. 고난을 겪은 자들을 위로하기 위해 먼저 고난을 겪는 일이기도 합니다.

(욥기 2310)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같이 되어 나오리라.

 


성경을 사랑하는 사람들 - 송길원의 요즘생각 -


“1901년 평양에서 개최된 사경회에는 압록강가의 삭주 창성지방의 자매들이 행리를 머리에 이고 등에 지고 300리 길을 걸어왔고 그 이듬해 평양에서 열린 사나이사경회에는 멀리 전라도의 목포 무안지방에서 참석한 이들이 있었다.

190910일간의 성경 공부를 위해 한 자매는 쌀자루를 이고 300마일을 걸어왔고 다른 이들은 거기에다 아이들까지 업고 왔는데 그들은 손때 묻고 닳은 성경책을 갖고 있었다.” 지금부터 120년 전, 그리스도신문(6-5, 1902.1.31.) 보도 내용이다.

선교 초기 기독교인들 성경을 사랑하는 그리스도인’(이만열교수)으로 불리었다. 이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인가? 5년 후, 선교사에 의해 한국 교회 성도들은 이런 평가를 받는다.


이 땅에서 발전되고 있는 기독교는 출중하게도 성경기독교이다. 복음 전도자들이 전도하기 위해서 가져가는 것은 성경이다. 믿어지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그것에 의해 사람들이 구원받고 있다. 한국 기독교인들이 매일 먹고 마시는 양식은 성경이다. 성경은 이 땅에 사는 수많은 사람의 정신적이고 영적인 자양분 중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Matters of Moment “Bible in the World” Mar.1907.)


마음이 바르면 너그럽고 꼬부라져 있으면 사납고 인색하다. 우리 주변에는 심사가 꼬부라져 펴고 살 줄 모르는 나발과 같은 어리석은 인생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심사가 꼬부라져 있으면 만사가 꼬여 돌아갑니다. 매사가 부정적이고 원망과 불평이 마음을 채우고 자기 욕심만 채우면 그만이라는 이기심과 인색함이 몸에 배어, 하루도 즐겁고 편안한 날을 누리지 못하고 삽니다. 자신이나 사회적인 문제에 대하여 옳고 그름을 가릴 분별력도 없어 곧 죽음이 닥쳐도 전혀 깨닫지 못합니다.

정말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찾아주셔서 열여덟 해 동안이나 귀신에 사로잡혀 꼬부라진 채 고통스러운 인생을 살던 여인을 멀쩡하게 고쳐주신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도록 기도해주고 진리와 생명의 복음을 전해 줘야 합니다.

그리하여 꼬부라져 오로지 땅의 것, 아래로만 향해있던 눈길과 인생의 목적이 하늘을 향하여 곧게 펴지고 주변을 돌아볼 줄 아는 너그러운 심령이 되어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기까지, 먼저 믿는 우리가 수고하고 힘을 다할 사명이 있음을 각자 마음 깊이 새기고 분발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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