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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구칼럼】 기독교 양반

정성구 고문 기자   기사승인 2020.01.18  10: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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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성구(전 총신대, 대신대 총장)

내 어머니는 안동의 온혜 마을에서 장녀로 태어났다. 외할아버지는 퇴계 학파의 선비로서 1950년대 초에 퇴계 선생님이 세우신 도산서원의 원장을 지내기도 했다. 내 외조부는 평생을 온혜 마을 서당에서 글을 가르친 선비였다. 그러니 어머니도 비록 가난하게 살았지만, 양반집 규수의 풍모를 지녔다. 어머님이 예수는 늦게 믿었지만, 나중에는 거의 교회당에서 살다시피 내가 학문의 길을 잘 달려가도록 결사적으로 기도하셨다. 그런데 어머님이 내게 하신 교훈 중에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 것이 있다.

“양반은 아무리 어려운 역경이 온다고 해도 절대로 술수를 쓰지 않는다”고 하시면서 “언제나 정도를 가라”고 했다. 가령 양반 곧 선비는 다른 사람의 모함을 받거나 임금의 진노를 사서, 원치 않는 장소로 귀향을 간다고 해도 대궐을 향해 사배하고 임금의 뜻을 조용히 기다린다. 그것이 선비의 도리였다.

독자들은 오늘과 같은 광명한 천지에 뭔 케케 묵은 이조 시대의 말을 하는 가 할 것이다.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요 자유와 민주, 평화를 최고의 가치로 알고 사는 나라이다.

더구나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거듭나고 구원의 기쁨을 누리고 사는 시대이다. 한때 우리는 본래 허물과 죄로 죽었던 사람들이요, 소망이 없었던 자들이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값없는 은혜로 죄 사함 곧 구속함을 받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 곧 크리스천이 되었다. 말하자면 우리는 변하여 새사람이 되었다. 새사람은 단지 성령으로 거듭났을 뿐 아니라 우리들의 세계관, 인생관, 우주관, 역사관도 바뀐다.

그럼에도,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은 교회에서 봉사도 잘하고, 신앙생활에 익숙해졌지만, 하나님의 사람으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인격이 갖추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즉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이나 자존심이 없는 경우가 많다.

옛말에 「양반은 물에 빠져도 개헤엄은 안친다」는 말이 있다. 그것은 아무리 위기에 처해도 양반으로서의 자존심과 체통과 정체성을 지킨다는 뜻이다. 부정적인 시각에서 본다면 양반과 선비들의 이중인격과 위선을 문제 삼을 만하다. 이조가 멸망한 것은 유교사상에 갇혀 있는 양반 곧 선비들의 타락이 문제였다.

그런데 중생의 체험을 한 그리스도인은 변하여 새사람이 되었기 때문에 천국 백성이 되었다. 어떤 의미에서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그룹 곧 천국 양반, 천국 선비가 아닐런지?

우리는 신분이 달라졌다. 우리는 비록 세상에 발붙이고 살지만, 세상에 속한 자는 아니다. 어느 경우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천국 백성으로서의 자존심과 천국의 법도와 양심에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 할 것이다. 우리의 정도는 하나님 앞에서(Corem Deo)의 삶이어야 한다.

요즈음 우리 사회는 지나치게 자유를 많이 부르짖고, 프랑스 혁명이니, 동학혁명이니, 4•19니 5•18이니 촛불 혁명, 민중혁명을 부르짖으며 위도 없고, 아래도 없고 표준도 없는 제멋대로의 사회가 되어버렸다. 이는 마치 19세기 서유럽에서 계몽주의, 인본주의, 자유주의 무신론 사상이 팽배할 때 당시 구호가 「하나님도 없고 주인도 없다」(No God, No Master)라고 외쳤던 것과 아주 흡사하다.

오늘날은 제2 계몽주의 시대이다. 위도 없고 스승도 없고 선배도 없는 세상이 되었다. 세상이 이렇게 되자, 교회의 메시지도 가난한 자, 병든 자, 소외된 자, 억울한 자를 위로 한답시고 오늘의 한국교회에 던져지는 메시지는 세상에서 잘 먹고 잘살고 즐기자는 아주 부끄럽고 천박한 기독교가 되어 버렸다.

아무나 은혜받으면 목사가 될 수 있다고 수백 개의 신학교에서 경쟁적으로 매년 수천 수만의 목사를 찍어 내고, 신학적으로 교리상으로 인격적으로 정리되지 못한 자들이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고, 이상한 방법과 술수로 듣기가 민망한 세속적인 이야기를 뱉어내어도 <할렐루야 아멘>하는 시대이다.

우리는 천민 민주주의가 되어도 안 되지만, 천한 기독교, 천한 교회가 되어서도 안 된다. 유교적 사상에 매몰된 양반 선비도 체통을 지키고 그의 정체성을 지키려고 몸부림 쳤다면, 생명의 복음을 받은 그리스도인의 삶은 어떻게 해야 할까? 전도도 좋고 선교도 좋고 부흥도 좋지만 거기 매몰되어 수단, 방법이 좋은 사람이 성공사례가 되었다. 우리는 적어도 천지 만물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 구속주 하나님의 부름 받은 영적 양반으로 지조와 체통을 지켜야 하지 않을까?

오늘의 한국교회는 기독교 무당도 많고 기독교 상놈도 많다고 들었다. 얼굴이 뜨겁다.

참된 개혁주의적이고 복음적인 교회, 진리를 위해서 생명을 바쳤던 과거 기독교의 수많은 순교자의 삶이야말로 당당한 진정한 기독교회의 양반이자 선비였고, 세상을 바꾸는 변화의 주체가 아닐까?

정성구 고문 webmaster@bonhd.net

<저작권자 © 본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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