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에서 온 편지 ③

세월이 흘러도 잊히지 않는 분들이 계십니다. 무슨 글을 써야 하나? 마음만 바쁩니다. 글이 줄기를 잡지 못합니다. 이전 글들을 읽는 데, 눈에 들어오는 게 있습니다. 읽다가 글에 등장하는 권사님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아이고 목사님 아잉교!” 반기시는 권사님께 읽어 드렸습니다.

정권사님은 서른아홉 살에 남편을 잃었습니다. 세 아들과 시모님을 책임져야 했습니다. 먹어야 사는데, 식구를 먹여 살려야 하는데, 끼니가 걱정입니다. “하나님요, 먹을 것을 주세요. 부자 이병철씨의 회사에 가면 먹을 끼, 많겠지예. 그곳으로 보내 주세요.”하고 간절히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들어주셔서, 3년 동안 삼성그룹 안의 어느 식당에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식당에서 일을 하니 음식을 마음껏 먹고, 집에도 가져올 수 있어 좋았다고 감사를 합니다. 할 수 있는 일이면 가리지 않고 달려들어 아들 셋 다 장가를 보냈습니다. 장가 못 들던 장자는 베트남 여인과 결혼을 하여 권사님의 집에서 함께 삽니다. 지금까지도 시모님을 모시고, 손자 손녀들을 키우십니다. 권사님이 배운 것이 없으니 돈 버는 일들이 대부분 궂은일들입니다. 요즘도 청소를 하러 다니시는데, 얼마나 아픈 곳이 많은지요. 그래도 싱글벙글 감사, 또 감사를 합니다.

몇 년 전인가 제주도에서 덤프트럭 사업을 하던 아들이 사고로 모든 것을 날렸습니다. “내 팔자야, 내 팔자야해야 할 순간에도, 아들을 지켜 주심에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아들에게는 하나님이 지켜 주실 것이라고 위로하며 권사님의 스물아홉 평의 아파트로 오게 했습니다. 한 아파트에 두 아들 내외가 자식까지 데리고 살았습니다. 권사님은 오히려 사람 사는 것 같다고, 좋아하시며 말끝마다 감사를 했습니다. 늘 웃으시는 권사님, 늘 감사하는 권사님입니다.

한번은 다리가 아파서 저에게 기도를 받았습니다. 다음날, 신기하게도 하나도 아프지 않아 일을 하면서 빨리 목사님에게 달려가서 이 소식을 알려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교회에 달려와 보니, 제가 없습니다. 제가 늘 교회에 있으니까 있겠지, 하시고 그냥 온 겁니다. 월요일이라 저는 외출 중이었습니다. 권사님은 하는 수 없이 1층의 작은 예배실에 들어갔습니다.

기도라도 해야지 하고 않으니 기도는 안 되고 눈물만 납니다. “내 인생이 왜 이리 힘드노, 왜 고난이 끝이 없노?” 하는 생각에 속상한데, 갑자기 환상이 보입니다. 십자가에 보니 주님이 피를 뚝뚝 흘리고 계십니다. 너무나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네가 나보다 아프냐? 고통스럽냐?” 하십니다. 그 말에 권사님은 아무 말도 못했습니다. 눈물만 하염없이 쏟았습니다. 가슴이 터지고, 눈물샘이 터져 폭포수같이 흘러내렸습니다. “아임니더, 주님, 아니라예하고 권사님이 대답을 하시는데 마음에 평안이 깃듭니다. 미안하고, 부끄러운데, 신기한 것은 마음에 기쁨이 찾아 들었습니다.

핸드폰으로 이렇게 읽어 드리는 데, 권사님이 우십니다. “목사님요, 진짜로 지는 아무 꺼도 아니라예.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하루도 몬 살지요. 지금도 은혜 가운데 잘 살아요. 인생 뭐 별거 있능교. 다 그렇고 그렇지예. 이제 둘째가 매달 용돈도 보내오고요. 텔레비전을 보는데 아프리카 애들이 너무 불쌍해서 후원금을 보내려고 해요. 목사님요. 고맙심더. 진짜 고맙다 아인교

권사님의 물기 가득한 목소리는 작은 울림이 되어 내 가슴을 채웁니다. 늘 웃으며 감사하는 권사님, 더 행복하시기를 두 손 빌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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